“최근에 무너진 사법 신뢰와 재판의 권위를 회복해 자유와 권리에 봉사하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겠습니다.”
이균용(61·사법연수원 16기) 대법원장 후보자는 23일 지명 후 첫 공개석상 발언에서 사법부의 ‘신뢰·권위 회복’에 방점을 찍었다. 이날 오전 관례에 따라 김명수 대법원장을 면담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찾은 그는 지명 소감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간 김명수 코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숨기지 않던 그는 김 대법원장 예방 직전에도 이 같은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특히 사법 신뢰와 재판 권위가 무너진 시점을 ‘최근’이라고 특정해 눈길을 끌었다.
◆“공정과 중립성은 사법제도의 기본”
이 후보자는 문재인정부와 김명수 사법부 체제에서도 현직 고위 법관 중 이례적으로 사법부 신뢰 저하와 정치화 등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법원을 둘러싼 작금의 현실은 사법에 대한 신뢰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법원이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등의 과거 발언에 대해 “그 이상 더 특별히 말씀드릴 것은 없다”며 “재판의 공정과 중립성은 어느 나라 사법제도에서도 기본이다”라고만 답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바람직한 법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후보자는 자신을 지명한 윤석열 대통령과의 친분관계 대해서는 ‘그냥 아는 정도’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친한 친구의 친구다 보니까, 그리고 당시 서울대 법과대학에 (한 학번이) 160명인데 고시 공부하는 사람이 몇 명 안 돼서 그냥 아는 정도이지 직접적인 관계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말한 ‘친한 친구’는 윤 대통령의 대학 동기인 문강배 변호사다.
이 후보자는 보수 성향 법관으로 평가되지만, 그가 지난 33년간 판사 생활을 하며 내린 판결에서는 뚜렷한 성향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 평가다.
이 후보자는 2021년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기소된 신광렬·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 항소심 재판에서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범죄를 저질렀다고 의심 받는 법관이 누구이고, 그 혐의가 사실인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파악하는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사무의 수행일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법행정의 역할 중 하나”라며 이를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 대법원이 ‘한의사의 뇌파계 사용은 합법’이라고 결론 내린 판결의 원심도 이 후보자가 재판장으로 심리한 사건이다. 이 후보자는 2016년 서울고법 행정2부 재판장 당시 한의사 A씨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한의사 면허자격 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면허정지 처분을 취소하라”며 원심을 뒤집었다.
◆판결에 뚜렷한 성향은 안 보여
서울고법 형사7부 재판장 근무 때는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대해 1심의 무죄를 뒤집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집회·시위는 과격하고 폭력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과잉살수가 방치돼 사망사건이 발생했다”며 피고인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재판장이던 2008년에는 아파트 매매 사기 사건에서 부동산 중개업자가 신분증과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더라도 등기권리증을 점검하지 않아 사기를 당한 경우 중개업자에게 70의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울산지원 단독판사였던 1998년엔 단체협약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노동자 사건을 심리하면서 ‘단체협약에 위반한 자’를 형사처벌한다는 옛 노동조합법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헌재는 이 후보자의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법률이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24일 김 대법원장 주재로 열리는 마지막 정례 대법관 회의에 ‘압수수색 영장 사전 심문제’ 도입 안건이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를 둘러싼 검찰의 반발과 논란에 대한 마무리는 이제 이 후보자의 손으로 넘어갔다.
◆野 “철저 검증”… 국회 인준 험로 예고
더불어민주당이 23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송곳 검증을 예고한 만큼 인준 과정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인사청문회법상 대법원장은 국회 동의가 필요해서다. 과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임명은 무산된다. 민주당은 임명동의안이 국회로 전달된 뒤 정식으로 인사청문특위 위원을 구성, 청문 준비에 나설 방침이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지도부는)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 관련해서 철저한 인사검증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은 인사청문회법에 따라 여야 의원 13명으로 구성되는 대법원장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청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후 국회 본회의에서 과반 의석이 출석한 가운데 표결을 거쳐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한다. 168석 민주당이 반대한다면 임명이 불가능하다. 여소야대 국면이던 지난 20대 국회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7년 9월 당시 30~40여표를 야당으로부터 얻어내 가까스로 절반을 넘긴 바 있다.
민주당은 우선 당 소속 법제사법위원들과 법조계 인사들에게 세평을 조회하는 한편, 이 후보자가 그동안 내린 판결문을 분석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날 세계일보와 만난 자리에서 “판결을 전후로 이해관계라는 것이 생기지 않나”라며 “여러 갈래로 이 후보자를 검증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보수성향’으로 알려진 이 후보자가 내린 판결을 두고도 공박이 예상된다. 변호사 출신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을 친한 친구의 친구라고 칭하는 이 후보자는 보수성향이 짙은 것으로 알려졌고 사법 농단에 관여한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인물”이라며 “대법원 판결은 판례로 남아 다른 재판에 영향을 주며 법률에 준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고 정의와 공정은 물론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해야 한다”고 논평을 통해 강조했다.
이 후보자의 재산 형성 과정도 검증 대상이다. 이 후보자는 올해 3월 30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아파트(110.65㎡·11억5000만원)를 배우자와 공동 보유했고, 경북 경주시 토지(1억519만원), 2009년식 그랜저 차량, 예금(6억2122만원) 등 배우자 재산 포함 총 64억원대 재산을 신고한 바 있다. 배우자 재산은 서울 서초구 양재동 근린생활 및 업무시설용도 건물 지분 절반(22억3792만원), 예금(10억3718만원), 보석 등 42억8000만원을 신고했다. 현금성 자산은 24억5498만원을 신고했다. 이외에 이 후보자 본인이 보유한 예금 6억2122만원, 장남 예금 4억9061만원, 장녀 예금 2억4852만원을 보유했다고 신고했다.
민주당 역시 무조건 ‘반대’만 하진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입법부의 행정부·사법부 발목잡기가 연출된다면 그것도 부담이라서다. 한 민주당 법사위원은 “이 후보자가 문제가 있는 인물은 아닌 것으로 안다”라면서 “청문회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