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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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토종AI 성장기반 지금 조성할 때

올해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키워드는 ‘인공지능(AI)’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챗GPT 등장 이후 AI는 대중 깊숙이 자리 잡았다. 이제 AI를 빼놓고 미래 산업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의 기고문을 인용하면 “AI는 시대의 게임체인저다. 산업·경제·군사 등 모든 권력의 토대가 돼 전 세계 패권 경쟁을 좌우할 것”이다.

전 세계 AI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은 이미 치열하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엄청난 인력과 비용을 쏟아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챗GPT를 개발한 오픈AI의 대규모언어모델(LLM)을 적용한 ‘빙’ 검색엔진을 먼저 선보였다. 곧이어 구글이 초거대 AI 모델 람다를 이용한 검색 서비스 ‘바드’를 내놓았다. 구글은 바드 한국어 서비스를 내놓으며 한국 시장 공략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이진경 산업부 차장

마크 저커버그가 이끄는 메타는 LLM 모델 ‘라마2’를 개발했다. 라마2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로 공개해 이용자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메타는 MS와도 손잡고 MS 클라우드 서비스인 애저에 라마2를 탑재했다. 여기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도 AI 기업 ‘xAI’를 설립했고, 애플도 자체 챗봇인 ‘애플GPT’를 개발해 시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들도 뛰어들었다. 네이버가 공개한 하이퍼클로바X는 금융, 게임, 모빌리티, 교육, 전자문서 서비스 등 여러 분야 서비스에 결합돼 활용될 예정이다. 네이버는 검색에 특화해 개발된 대화형 AI 검색 서비스 ‘큐:’도 연내 출시한다. LG(엑사원 2.0)와 엔씨(바르코)도 초거대 AI를 내놨고, 카카오와 SK텔레콤, KT 등도 초거대 AI 공개를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자체 초거대 AI를 보유한 4개국 중 하나다. 성능 면에서도 다른 AI 모델들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토종 AI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만이 아니라 해외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AI를 운영·활용·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해외 AI만 있다면 데이터 유출이나 기술 종속 우려가 커진다. 특히 영어가 아닌 한국어 기반 서비스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해외 빅테크에 밀려 회복할 수 없게 된 사례는 적지 않다. PC 운용체계(OS)와 검색시장은 MS와 구글이 차지하고 있다. 스마트폰 OS도 안드로이드와 iOS로 양분돼 있다. 전 세계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들은 이들 앱 마켓에 수수료를 내고 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국내 업체가 밀리고 있다. 검색시장을 내준 유럽이 되찾기 위한 시도를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직 절대 강자가 나타나지 않은 지금, 토종 AI가 기반을 갖추고 성장하려면 정부와 국회, 기업 등 각 주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점검해야 할 때다. 국내 AI 정의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황은 개선이 필요하다.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도 서둘러야 한다. 지원보다 플랫폼에 대한 규제 강화 목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규제는 발목 잡기가 아닌 AI가 제대로 활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진경 산업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