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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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치료감호시설 ‘헛바퀴’… 10년째 의사 정원 미달 [심층기획]

국립법무병원 내실화 시급

의사 1명이 환자 77.23명 진료 감당해
영국은 20명·일본은 8명… 실태 열악
성폭력 치료센터는 전담 의사 1명 뿐
의사 태부족인데 10월 400병상 증설
치료보다 감호 급급… 감옥 전락 우려

정신질환자 범죄 기승… 국민 불안 고조
정부 “사법입원제 도입… 선제적 치료”

법무부 산하 치료감호시설인 국립법무병원(옛 치료감호소)이 10년째 의사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를 가두는 것을 넘어 치료를 통해 재범을 막는 것이 치료감호의 목적임을 감안하면 의료인력 현황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 경기 성남 분당구에서 차량 돌진 및 흉기 난동을 벌여 1명을 숨지게 하고 13명을 다치게 한 최원종(22·구속)과 서울 관악구 한 등산로에서 성폭행 살인사건을 저지른 최윤종(30·〃)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만큼 치료감호시스템의 내실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간판은 ‘병원’, 의사는 ‘태부족’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법무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립법무병원의 의사 정원은 최근 10년간 정원 미달을 면치 못했다. 의사 정원은 2014~2017년 17명이었는데, 이 기간 실제 근무한 의사는 10.5~14명 수준이었다. 2018년 이후 정원이 20명으로 늘어났지만 의사 수는 오히려 더 줄어든 8~10.5명에 그쳤다.

이 중 일부는 공중보건의인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법무병원 내 성폭력 치료재활센터의 경우 2018년엔 의사 7명이 근무했는데, 2021년부터는 1명이 전담하고 있다. 민간에 비해 낮은 보수, 지방 근무 기피 등이 구인난 심화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기준 법무병원의 전체 수용인원은 811명이다. 2014년(1202명)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의사 1인당 77.23명의 진료를 감당하고 있다. 현행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정신건강복지법) 시행규칙은 입원환자 60명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1명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준수하지 못한 ‘과잉진료’인 것이다.

영국이 의사 1명당 환자 20명, 일본은 8명을 보는 점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치료감호 실태는 열악하기만 하다. 조성남 법무병원장은 “일반 병원의 경우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환자를 내보내야 하지만 우리는 마음대로 퇴원시킬 수도 없으니 법을 위반하며 환자를 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설상가상 오는 10월이면 400병상이 증설된다. 의사 부족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져 법무병원 운영이 자칫 ‘치료’보다는 ‘감호’ 위주로 흘러 사실상 교도소, 구치소와는 이름만 다른 또 하나의 감옥으로 전락할 우려가 나온다. 법무병원의 외형만 키울 것이 아니라 내실 있는 치료감호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때다.

박용진 의원은 “묻지마 칼부림 등 범죄로 인한 시민의 안전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등 엄벌주의만으로 지켜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본질은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사전예방에 있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태부족, 정신질환자의 분리수용 문제, 성폭력 치료재활센터 의사는 1명밖에 없는 현실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며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을 더 정비하는 것이 법무부의 할 일”이라고 했다.

 

◆해결책으로 떠오른 사법입원제

정신질환자에 의한 반복적인 범죄로 국민 불안감이 커지자 정부는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한편 사법입원제 도입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는 “‘묻지마식 흉악범죄’ 등으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큰 일부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입원 및 격리 제도가 적법절차에 따라 실효성 있게 운용될 수 있게 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법관의 결정으로 중증 정신질환자를 입원하게 하는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법입원제는 자·타해 위험성이 큰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 목적의 강제입원 여부를 판사와 정신건강 전문가로 구성된 기관이 결정하는 제도다. 2019년 4월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안인득(46·무기징역)이 벌인 방화 흉기난동 사건을 계기로 국회에서 논의가 있었으나, 여야의 정쟁 속에 뒷전으로 밀려났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강제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신청 △소속이 다른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하는 ‘행정 입원’ △경찰, 의사 동의로 3일 동안 입원하는 ‘응급 입원’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엄격한 규정은 강제입원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이지만, 실제 입원치료가 필요한 환자의 가족들은 결정에 앞서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사이 가족이 환자에 의한 존속살해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이 느끼는 부담을 국가가 대신 지고 강력범죄도 예방하겠다는 것이 사법입원제의 취지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동우 정책연구소장은 “사법입원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며 “응급상황까진 아니더라도 본인이 치료를 거부해 증세가 악화한 사람들이 입원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치료감호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이 소장은 “회의가 열리면 10명 내외 사례가 올라오는데 그중 절반이 존속살해다. 조현병 환자들이 피해망상 때문에 가족들을 살해하는 일이 허다하게 있다”며 “이제는 무고한 주민들까지 살해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건 국가의 직무유기”라고 강조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