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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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3) 스페인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 엘 시드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11세기 엘 시드는 알폰소 6세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그의 고향인 부르고스를 떠났다. 부르고스에 있는 엘 시드 동상. 스페인관광청 제공
“기도하고, 미사를 드린 후 그들은 출발합니다. /엘 시드는 잠시 머물러 히메나를 그의 마음에 새깁니다. 히메나는 슬픔에 잠겨 그의 손에 키스했습니다. / 엘 시드는 딸들을 바라보며 “이들을 하나님께 맡깁니다”라고 읊조립니다. /마치 손톱이 떨어져 나가듯이 이별의 고통은 날카로웠습니다.”

 

이 구절은 1207년 발표된 가장 오래된 스페인어 구전 문학작품이자 3000여 행에 걸친 장편 서사시 <엘 시드의 노래>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 엘 시드가 부인 히메나와 딸들을 남겨두고 전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순신이 있다면 스페인에는 엘 시드가 있다. 카스티야의 귀족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iaz de Vivar). 엘 시드는 실존 인물이다. 그는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과정인 ‘국토수복전쟁(레콩키스타·  Reconquista)’에서 가장 뛰어난 장군이자 영주였다. 엘 시드는 스페인의 모체가 된 카스티야 왕국의 국왕인 알폰소 6세로부터 모함을 받아 파문당했다. 그는 1094년 무어인들과의 전투에서 발렌시아에 대한 지배권을 되찾고 영주로 올라섰지만, 1099년 무라비트 왕조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엘 시드의 노래는 무어인들과 싸우는 엘 시드의 용기, 군주에 대한 충성심, 가족에 대한 따뜻한 사랑,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으려는 무어인 포로들에게 보여준 관대함 등을 잘 묘사한다. 보통의 서사시는 초인적이며 과장되게 주인공을 그리지만, 작자가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사실에 기초하였고 엘 시드의 따뜻한 면모를 잘 나타낸다.

엘 시드가 거쳐 갔던 지역인 카스티야 이 레온주(州)의 로보스 강 협곡. 스페인관광청 제공

이 작품에서 나타난 대로 국토수복전쟁에서 무작정 무어인들을 죽이거나 차별하지 않았던 ‘공존(콘비벤시아· Convivencia)’의 정신이 오늘날 스페인 사람들에게도 이어진다. 스페인에 살면서 경험하기로는 스페인 사람들은 외지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고, 가족들의 유대를 중시하는 보편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다. 

 

엘 시드의 역사적인 생애를 그대로 따라가는 길이 2000km의 관광 루트도 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카스티야 라만차, 아라곤 및 발렌시아 주(州)를 지나간다. 이 경로에는 고딕, 무어, 로마네스크 양식이 섞여 지어진 건축물이 많이 있고, 70개 이상의 자연 보호 구역과 세계유산이 있다. 꼭 한번 가볼 만하다. 

엘 시드가 1094년부터 1099년까지 영주로 있었던 발렌시아의 시내 모습. 스페인관광청 제공

우리도 이순신 길을 만드는 건 어떨까? 이순신의 ‘난중일기’도 <엘 시드의 노래>처럼 훌륭한 사실적 전쟁문학이고, 그의 역사적인 궤적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도 크다. 이순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서울과 아산, 그리고 전쟁을 벌였던 옥포, 사천, 한산도 등 여러 지역의 역사적인 기념물과 콘텐츠를 연계하여 둘러보도록 한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 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