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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지우기 나선 국방부, 확인되지 않은 ‘자유시 참변’ 개입론 제기 [이슈+]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등의 흉상 이전 논란으로 국방부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독립운동 단체에서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고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에서도 ‘이념 과잉’, ‘매카시즘‘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방부는 청사 내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지만 해군도 주력 잠수함인 홍범도함에 명칭 변경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선을 긋는 모양새다. 

 

이에 국방부도 당초 이전을 검토했던 독립전쟁영웅 5인 중 홍범도 장군 흉상만 이전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28일 오후 추가 입장문을 통해 “이번 독립운동가 흉상 이전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공산주의 이력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 시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故)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뉴시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께서 항일무장투쟁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업적은 부정할 수 없으며, 정부도 이를 인정하여 1962년에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국방부가 이를 폄훼하거나 부정할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도 “하지만 장군께서 1921년 소련 자유시로 이동한 이후 보이신 행적과 관련해서는 독립운동 업적과는 다른 평가가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이력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자유시 참변 개입론도 제기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이 소련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있다. 이로 인해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유시 참변으로) 독립군 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하였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한 것”이라며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은 업적대로 평가하되, 이후 소련 공산당 활동에 동조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달리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홍범도 장군의 자유시 참변 개입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홍범도 장군의 평전인 민족의 장군 홍범도’의 저자 이동순 작가(영남대 명예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자유시 참변 논란은 소련 측의 무장해제 요구를 수용하자는 홍범도 장군의 방침을 반대한 사람들의 비난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러시아 홍군 측은 우리 독립군에게 ‘남의 나라에서 무기를 들고 다녀서는 안 된다’고 말했고 무기를 반납하고 허락을 받으면 돌려주겠다고 했다”면서 “홍범도 장군도 처음엔 거부했지만 이대로 가다간 비극적인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따르자는 쪽으로 의견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이종찬 광복회장도 이날 국방부 장관에게 공개서한을 보내며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과 관련해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것은 재판에서 독립군에 유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했다. 마치 소련 편에 서서 독립군들을 탄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것에 대해서도 “연해주(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의 무장투쟁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여 편의상 소련 공산당에 가담했다”면서 “그 후에도 봉오동 청산리 대첩에 무훈을 세웠고, 자유시 참변도 당했다”고 설명했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