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슈퍼히어로인 ‘아이언맨’의 원작자는 스탠 리지만, 지금의 아이언맨이 존재하는 데는 마블코믹스의 작가이자 작화가였던 밥 레이턴(70)의 영향이 컸다. 그는 아이언맨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친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의 정체)와 그를 둘러싼 인물 관계를 정립했고, 죽어가는 ‘코믹스’(만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스탠 리는 오리지널 아이언맨 콘셉트 구상만 했지 이야기를 쓰진 않았어요. 계속 유지된 설정은 ‘부자가 갑옷을 입고 싸운다’였죠. 마블에서 아이언맨은 B급 캐릭터였고 그렇게 밀어주지도 않아 작가진이 바뀌었죠. 연재 중단 직전에 아이언맨을 맡았는데, 나는 아이언맨보다 (슈트 안의) 토니 스타크를 그리고 싶었어요.”
1978년 마블코믹스에 합류한 레이턴은 데이비드 미켈라이니와 함께, 아이언맨의 스토리를 구상했을 뿐 아니라 작화가로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그가 참여한 1979년 3월부터 11월까지의 연재분(120∼128호)은 단행본 ‘병 속의 악마’로 출간됐으며, 지금도 팬들과 비평가들 사이에서 아이언맨의 인기를 되살린 동시에 주제의식도 빼어난 핵심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레이턴은 자신에 대해 “스탠 리가 아이언맨의 아버지라면 나는 대부”라며 “영화의 아이언맨은 내 버전의 아이언맨”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아이언맨의 ‘대부’ 레이턴을 ‘서울 코믹스 위크’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성동구 메가박스 메타그라운드에서 만나 그의 코믹스에 얽힌 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서울 코믹스 위크는 DCC(Dice & Comics Cafe)가 주최하고 시공사가 주관한 DC·마블코믹스 관련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자리로, 지난 25일까지 진행됐다.
◆죽어가는 아이언맨에 영혼을 불어넣다
1980년대 중반 전까지 미국의 코믹스는 신문과 함께 뉴스 가판대를 중심으로 유통됐다. 매달 발행되는 얇은 책자 형식의 이 연재물은 35∼40센트에 팔렸고, 그만큼 독자 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미켈라이니와 DC에서 함께 일하다 마블로 옮겼어요. 그때 마블이 (폐간 위기의) 아이언맨 작가를 찾고 있었는데, 우리가 맡기로 했죠. 할리우드 쇼를 만들듯이 둘이 앉아 1년간 어떤 이야기로 진행할지 얼개를 짜고 12개의 작은 이야기로 잘랐어요. 그렇게 새로운 아이언맨을 만든 거예요.”
앞서 언급했듯이 레이턴이 만든 아이언맨에선 악당을 일방적으로 때려눕히는 슈퍼히어로에서 벗어나, 기업을 뺏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는 백만장자이자 플레이보이인 스타크의 삶, 기업가로서 느끼는 압박과 실수를 회피하기 위한 알코올 의존 등이 그려진다. 그의 연인인 베서니 케이브와 영화에서 스타크의 라이벌로 그려지는 저스틴 해머도 레이턴 때 처음 등장한다.
“‘병 속의 악마’는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얘기였어요. 약물·알코올 중독 같은 문제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때거든요. (스타크의 생존을 위협한) 심장의 파편 문제를 해결하고, 그 대신 알코올 문제를 넣은 거죠. 사업가로서는 그 문제가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반응은 좋았다. 아이언맨의 인기는 다시 살아났고 팬레터도 쏟아졌다. “팬들이 만화를 읽고 나면 책에 (동봉된) 엽서를 보낼 수 있었는데, 한 보따리가 왔어요. ‘우리 아빠가 나쁜 사람은 아닌데, (약물·알코올 중독에 대한) 도움이 필요하다’ 같은 마음 아픈 사연도 많았죠.”
그는 그때 “만화가 사람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럼으로써 ‘클래식’(명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이 작품은 자신의 삶이 투영돼 있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토니 스타크 역을 맡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마찬가지다. “다우니와 알코올 중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제가 어떤 (나쁜) 에피소드를 얘기하면, 다우니가 더 나쁜 얘기를 하곤 했죠. 그런 심각한 중독을 극복해 낸 사람은 다우니밖에 없을 거예요. 극복해 내면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인이죠.”
아이언맨의 인기는 2000년대 들어 영화 시리즈로 제작되며 절정에 달했으며, 레이턴이 만든 스토리 라인이 영화 제작의 청사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코믹스의 몰락… 그 후의 새로운 삶
그는 아이언맨 외에도 ‘스파이더맨’, ‘허큘리스’, ‘어벤저스’ 등 다양한 작품에 작가와 작화, 공동창작자로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1980년대 후반 만화방이 쇠락했듯, 미국의 가판대 만화도 시대 흐름에 따라 도태되기 시작했다. “경제 이치이기는 한데 플레이보이 잡지와 어벤저스 만화가 가판대에 같이 있으면, 언제나 플레이보이가 이겼죠. 어떤 잡지든 만화책보다는 수입을 많이 낼 수 있는 시대가 됐고, 만화를 유통했던 잡지사들이 손을 뗐죠.”
코믹스 판매는 가판대에서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단행본 중심으로 바뀌었지만 이 역시 인기가 지속되진 못했다. 그는 유통 독점의 폐해를 지적했다. “당시 다이아몬드 디스트리뷰터라는 곳에서 코믹스 유통을 독점했는데, 반품을 못 하게 팔았어요. 이게 양날의 검처럼 돼 버렸죠.” 너무 많은 만화가 유통되면서 수집품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고, 코믹스에 대한 열정은 금방 식었다는 설명이다.
2000년대 그는 동료들과 퓨처코믹스를 세워 제작과 직접 유통을 시도했지만, “경쟁사의 조직적 방해” 때문에 사업은 실패로 돌아갔다. “미국인들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미국의 코믹스 (유통·소재) 시스템은 바뀌질 않았어요. 유럽과 아시아는 만화책을 단행본화하고 하드커버로 만드는 등 다양화했죠. 유럽의 다양한 장르 만화, 일본의 망가, 그중 하나는 한국의 웹툰이죠.”
그는 20년간 미국 코믹스가 변화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만 바뀐 건 없다고 했다. “미국은 코믹스 가격을 낮추고 인건비도 낮추고 있어요. 아티스트(만화가) 벌이도 좋지 않죠. 미국 만화 시스템의 좋은 점이 있다면 신진 작가가 유명 캐릭터를 맡아서 이름값을 높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는 최근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의 위상이 흔들리는 데 대해서도 의견을 보탰다. “슈퍼히어로가 SF나 호러처럼 하나의 장르가 됐지만, 여기엔 수작과 망작이 있는데 지금은 망작이 더 많은 상태죠.” 그가 창작한 슈퍼히어로는 코믹스는 슈트 안에 있는 영웅도 연약한 인간이라는 ‘본질’을 추구했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주변을 정리한 후 세계를 돌며 팬들과 만나는 중이다. “세계 여행을 결심했을 때 집과 차는 팔고, 짐은 장기 보관 창고에 넣었어요. 한 번도 안 가본 국가, 한 번도 안 먹어본 음식을 찾아 떠나기로 했죠.”
그의 여정은 지난 4월 그리스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돼, 서울이 7번째 방문 도시다. 그리고 그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선짓국과 순대, 닭발, 산 낙지까지 먹어봤다는 이 외국인은 “나를 한국에 초대한 DCC 사장 부부가 전생에 한국인이었을 거라고 했다”면서 “로스앤젤레스에서도 한국 음식을 먹어봤지만 다르다. 한국 현지 음식이 상당히 맛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뿐 아니라 한국 문화에 매료됐다. “한식 같은 경우 전 여자친구가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미리 알 기회가 있었다”면서 “최근 2년여간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서 한국 드리마, 특히 로맨틱 코미디를 많이 봤다. 그런 드라마를 보면 아이언맨을 ‘슈퍼히어로’하면 자동으로 연상되는 대명사처럼 쓰고 있어서,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아이언맨이 유명하단 걸 알았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한국드라마로 ‘도시남녀의 사랑법‘, ‘사랑의 불시착’ 등을 꼽은 그는 “2년간 한국드라마 80개 정도를 본 진지한 팬”이다.
그는 당초 6주간만 머무를 계획이었지만, 그 정도론 한국을 알기에 충분치 않다고 보고, 태국과 그리스에서 짧은 휴가를 보낸 후 다시 한국을 찾아, 올겨울을 보낼 예정이다.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겨울 동안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즐기려 해요. 그 후 내년 1분기엔 영화 촬영이 있는 스웨덴에 갈 예정입니다.”
레이턴은 자신의 현재 직업을 “코믹스와 영화를 통한 행복전도사”라고 소개했다. 그는 자신이 각본을 쓴 영화 제작을 준비 중이다. “스티븐 호킹이 다른 지적 존재가 나타나면 인류가 무너질 거란 얘기를 했어요. 영화는 외계인과 처음 접촉한 후, 그다음 단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그립니다. 우주여행을 최대한 불편하게 표현하고 싶고, 사람을 대체품 취급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한국에 반한 레이턴은 우주인 중 1명은 한국인으로 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레이턴은 웃으며 “원래 유지태를 캐스팅하고 싶었는데 연락을 받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배우를 생각 중”이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얘기를 했다.
이런 활발하고 자신감 넘치는 행보는 그의 성격을 반영하는 듯하다. 코믹스로 글자를 배운 이 만화가 지망생은, 잡지사 수습 시절 마블코믹스에 원고 복사본을 가지러 갔다가 아이언맨의 ‘잉커’(스케치된 그림을 잉크로 다시 그리는 일)를 찾는다는 전화 통화를 우연히 훔쳐 듣고, 덜컥 그 일을 자신이 맡겠다고 해버린다. 그가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가게 된 계기다.
“두려워하면 도전하지 못해요. 기회주의적인 사람이 되어야 해요. 산 낙지가 겁난다고 안 먹으면 맛을 알 수 없죠. 기회가 오면 항상 잡아야 합니다. 실수할 수도 있지만 안 하는 게 더 나빠요. 실패해도 괜찮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