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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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홍범도 연구가 이동순 시인의 좌절

SNS서 아리랑처럼 퍼지는 시 “내가 돌아오지 말 걸…”

학교 도서관 책장에는 많은 책들이 비치돼 있었다. 그 가운데 그의 눈길을 빼앗은 책들이 있었다. 누렇게 빛바랜 시집들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시인부터 시작해 김기림, 정지용, 백석 등의 시집까지. 대구농림고 학생 이동순은 농장 일을 끝마치고 찾았던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시를 접했다. 이런 세계도 있었구나.

 

시에 빠져든 그의 마음을 뒤흔든 건 신석정의 시집들이었다. 신석정의 시에는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를 비롯해 유독 어머니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다. 바로 어머니라는 그 말이 그의 심금을 뒤흔든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한국전쟁 직후 김천에서 태어났지만 10개월 만에 어머니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후 굴곡진 삶은 어머니라는 말만 나와도 그를 전율하게 했다.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벽에 신석정의 시들을 붙여 놓고 외우고 또 외웠다. 시를 읽던 그의 마음 한켠에서 어떤 소망 같은 게 연기처럼 피어났다. 나도 이렇게 써봤으면. 어느 새 시를 흉내 내고 있었다. 글을, 시를 쓰는 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시인 이동순의 원점이었다.

 

시 창작도 열심이었지만, 특히 노래를 좋아했다. 충북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5년 무렵 김지하와 다음 날 새벽까지 노래 대결을 벌인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술 한 잔 하거나 강연이나 공연을 할 때면 아코디언을 어깨에 메고 연주도 한다.

 

천상 시인인 그의 심기가 요즘 불편하다. 아니 울분으로 가슴이 찢어진다고 했다. 다정한 사연으로 인기를 끌던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생경한 글이 이어진다. 정부의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움직임 때문이다. 시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와 관련한 윤석열정부의 입장을 보면 내용 자체가 터무니없이 왜곡돼 있는 데다가 굴곡진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탁월한 독립운동가를 모욕하고 낙인찍고 있다”고 통탄했다.

 

오랫동안 시를 써온 시인이지만, 그는 한편으론 40년 넘게 홍범도 장군을 연구해온 홍범도 전문가다. 그러니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립투사였던 조부 이명균 선생의 일대기를 들으며 자랐다. 조부는 김천에서 군자금을 모아 만주와 상해 등지로 보내다가 일경에 붙잡혀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숨졌다.

 

집안 어른들의 회고담과 유품, 서찰, 옛 신문기사를 읽고 독립운동사를 공부해 가던 그에게 언젠가부터 인상적인 독립운동가가 다가왔다. 바로 홍범도였다. “홍범도 장군은 다른 독립운동 지도자들과 달리 귀족 출신이 아니라 포수 출신이었습니다. 김좌진 장군에 가려서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측면도 있었고요.”

 

1980년대부터 홍범도 연구를 시작했고, 특히 2000년에는 미국 하버드대에 가서 국내에서 접하지 못한 많은 자료를 입수했다. 그리하여 2003년 10권 분량의 장편 서사시 ‘홍범도’를 발표했고, 다시 20년 뒤인 올해 평전 ‘민족의 장군 홍범도’를 펴냈다. 40년이 넘는 집념의 연구였다.

 

며칠 전, 그의 SNS에 자작시 ‘토왜타령’이 내걸렸다. 북토크 당시 그가 행사장에서 낭송한 시였다. 홍범도와 그의 좌절과 통탄과 슬픔이 알려지면서, 시는 지금 수많은 이들에 의해서 퍼지고 또 퍼지고 있다. 마치 아리랑처럼.

 

“내가 돌아오지 말 걸/ 공연히 돌아와서 이 꼴을 보네/ 하지만 이 위기에 나 필요해서 불렀으리니/ 오늘은 숫돌에 장검을 들게 갈아/ 망나니처럼 덩실덩실 칼춤이나 출까나/ 너희 도깨비 무리를 단칼에 썩 베는/ 신나는 칼춤이나 출까나”(‘토왜타령’ 부문)


김용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