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韓 노병들이 추모비 세워… 전쟁영웅 기억하다 [김동환의 김기자와 만납시다]

도봉역 인근 美 워커 장군 전사지

인천상륙작전 발판 낙동강 사수 주역
“죽느냐, 사느냐” 외침… 군인정신 표상
아들 훈장 수여식 이동 중 교통사고
워커 장군 언덕 ‘워커힐’에도 추모비
칠곡엔 흉상 제막… 희생·헌신 기려

지난달 28일 서울시청역에서 지하철 1호선으로 약 40분을 달려 도착한 도봉역 2번 출구로 나와 왕복 6차로 도로를 건너 오른쪽으로 인도를 따라 60m가량 걸으니 ‘미 육군 대장 월턴 해리스 워커 전사지’ 추모비가 보였다.

1950년 12월23일 전사한 6·25 참전 용사인 주한 미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1889년 출생) 장군(중장·사후 대장 추서)을 기리고자 우리나라 노병들이 2009년 12월 사재를 모아 세운 추모비다. 태극기와 성조기로 장식된 추모비 근처에는 ‘한국 위해 희생하신 워커 장군님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추모비 앞에서 만난 70대 노인은 “날마다 이곳을 오가며 추모비를 본다”며 “이렇게라도 6·25전쟁 용사를 기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말하고는 묵념 후 자리를 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도봉역 2번 출구 인근의 ‘미 육군 대장 월턴 해리스 워커 전사지’ 추모비. 6·25 참전 용사인 주한 미8군 사령관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을 기리고자 우리나라 노병들이 2009년 12월 사재를 모아 세웠다.

◆‘낙동강 전선’ 사수로 인천상륙작전 발판

미국 텍사스 출신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 전선을 지휘한 워커 장군은 6·25전쟁 발발 2주 정도가 지난 1950년 7월12일 주한 유엔 지상군 사령관 겸 미8군 사령관으로 한국에 부임했다.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회자하는 ‘오직 죽느냐, 사느냐’(Stand or Die)는 외침으로 유명한 그는 재임 중 가장 방어가 어려웠다는 낙동강 전선(Walker Line·워커 라인)을 성공리에 지켜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 데 발판을 마련한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워커 장군은 같은 해 12월23일 오전 10시45분쯤 함께 참전 중인 아들 샘 워커 대위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하려 이동하던 중 지금의 서울 도봉구 도봉동 596-5번지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워커 장군의 시신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워터 장군의 정확한 전사지는 추모비에서 약 200m 떨어진 상가 일대로 파악된다.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장이 2014년 6월 ‘동족상잔 비극을 조명하는 장소로 영구 보존해 후세들에게 교훈으로 전하고자 한다’는 표지판을 붙인 전봇대를 찾으면 된다. 김 회장은 관련 자료를 샅샅이 뒤져 분석하고 도봉구 주민 증언 등을 토대로 정확한 사망 지점을 찾아냈다고 한다. 도봉구는 하반기 중 워커 장군 기념 공간을 본격 조성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워커힐 호텔’서 ‘캠프 워커’까지

광진구 광장동 ‘그랜드 워커힐 서울 호텔’은 휴일이나 휴가를 맞이한 주한 미군이 국내에서 소비하도록 1963년 조성된 종합 휴양시설이다. 워커 장군을 기리는 의미로 ‘워커 장군의 언덕’이라는 뜻인 ‘워커힐’(Walkerhill)로 명명돼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이 호텔 산책로에는 도봉역 추모비보다 훨씬 앞선 1987년 들어 워커 장군 추모비가 설치됐다. 호텔 셔틀버스 정류장과 10m 거리의 산책로로 접어들어 80여 계단을 오르면 널찍한 공간에 마련된 추모비가 보여 투숙객 등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백방으로 워커 장군 정보를 수집했던 김 회장의 노력이 이 추모비 건립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도봉역 2번 출구 인근 추모비에서 약 200m 거리 상가 일대 전봇대에 붙은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 전사지 표지. 김리진 워커대장추모기념사업회장이 2014년 이 표지를 붙였다.

경기도 평택의 미군 험프리스 기지의 워커 장군 동상이나 대구에 있는 미군 기지 ‘캠프 워커’(Camp Walker)도 그를 기리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 7월에는 경북 칠곡군의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서 워커 장군 흉상 제막식이 열렸다. 워커 장군을 또래 친구들에게 알려달라는 김동준(장곡중)군과 친구들이 김재욱 칠곡군수에게 보낸 ‘민원’이 발단이 됐다. ‘1000원의 힘을 믿습니다’라는 현수막을 내건 김 군수와 칠곡군 한미친선위원회의 모금운동에 5000명이 힘을 보태 어린이 눈높이를 고려한 153㎝ 높이의 흉상이 탄생했다.

당시 김 군수는 “워커 장군 흉상 제막은 그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호국과 보훈의 가치를 드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