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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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재명 생뚱맞은 단식, ‘불체포특권 포기’ 회피용 꼼수다

검찰 출석·정기국회 앞두고 돌입
“민주주의 파괴 막으려” 명분 퇴색
약속한 대로 사법 절차에 따라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어제 윤석열정부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 난데없이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그는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에서 “윤석열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면서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부를 향해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사죄, 일본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개각 단행을 요구했다. 제1야당 대표가 뻔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요구를 내걸고 단식투쟁에 나서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 대표가 “민주주의 파괴를 막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단식투쟁을 시작한 진짜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자신의 사법 리스크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단식이라는 극한 수단을 통해 돌파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대통령·정부와 대결구도를 만들어 검찰 출석과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 준수, 대표직 사퇴 요구 등을 회피하려는 꼼수다. 수원지검은 이 대표에게 쌍방울 불법대북송금 의혹 관련 조사를 받으러 오는 4일 검찰에 나오라고 통보했지만 이 대표가 단식투쟁에 나서면서 출석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대북송금 사건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을 묶어 9월 중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방안을 검토 중인 검찰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대표가 정기국회 개회를 하루 앞두고 단식에 돌입한 것은 무책임한 행태다. 이번 정기국회는 내년 예산안 심의 등 민생 현안이 어느 때보다 산적하다. 여야가 밤을 새우면서 머리를 맞대도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이 대표가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정치적 안위를 우선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대표 말대로 정부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면 국회에서 싸워서 바로잡는 게 제1야당 대표의 책임 있는 자세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은 허울 좋은 구실에 불과하다. 국민들이 속아 넘어갈 리 없다.

이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민주당을 자신의 사법 리스크 방탄에 활용했다. 대선 과정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공약하고도 지키지 않았다. 그 결과 당도 자신도 수렁에 빠졌다. 그런데도 또다시 정치공학적 단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려 하니 참으로 뻔뻔하다. 이 대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명분 없는 단식투쟁이 아니라 약속대로 검찰 소환에 응하고 불체포특권을 포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