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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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궤적 스며있는 물건들에 관한 산문

또 못 버린 물건들/은희경/난다/1만7800원

 

소설가 은희경은 지난 3년 동안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지어 먹는가 하면, 화분을 들이고 뜨개질도 했다. 인터넷으로 물건도 샀다.

팬데믹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한 생활이었다. 그땐 늘 시간에 쫓기고 집밖으로 나돌았으니까. 그래서 집이란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질서와 루틴만 유지하는 곳이었다. 책들은 무질서하게 쌓이고 흐트러져 있었고, 생활에 쓰이지 물건들은 이삿짐 상태 그대로 선반에 처박혀 있었다.

은희경/난다/1만7800원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물건들이 눈총을 보내는 게 아닌가. 점점 압박해 왔다. 그래, 시간이 많아졌으니 정리를 해보자. 되도록 다 버려야지. 물건들 하나하나에 눈길을 줬다. 뜻밖에도 물건들에 깃든 지나간 시간과 추억과 인연들이 피어나는데….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느라 외출을 거의 못하던 시절, 친구 네 명이 갑자기 맥주를 사들고 집으로 찾아왔다. 급히 쟁반에 사람 숫자대로 유리잔 다섯 개를 챙겼다. 그런데 유리잔 짝이 맞는 게 한 벌도 없었다. “크기조차 다 달라서 맥주를 따르니 술의 양도 제각각이었다. 그 술상이 어쩐지 임시변통으로 살아가는 내 삶의 남루한 모습 같았다.”

작가가 된 뒤 첫 번째 책의 인세로 여섯 개 들이 맥주잔 세트를 샀다. 술잔 세트는 술을 마신다는 행위와 함께 사적인 호사의 시작으로 여겨졌다.

중견 소설가 은희경이 12년 만에 신작 산문집을 펴냈다. 신작 산문집에는 효율과는 크게 상관없지만 그와 함께한 시간과 삶의 궤적이 스며있어 쉽게 버릴 수 없는 물건들에 관한 산문 스물네 편이 수록됐다.


김용출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