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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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고발’ 운운하던 교육 당국 호소문… “교육부가 자초” 비판도 [4일 전국 교사 '연가 파업']

진보교육감 상당수 “집단행동 지지”… 공교육 ‘혼돈의 날’

당초 초등학교 중심 수백곳 휴업 예상
교육당국 ‘징계’ 압박에 휴업 줄었지만
개별적 연가·병가 신청 막기엔 역부족

일선 학교 다수가 단축수업·합반 예고
학부모 “등교 후 상황 봐야 한다니 답답”
“교육부 강경 대응해 사태 키워” 책임론

사상 초유의 교사 집단행동을 앞두고 교육계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연일 ‘징계·고발’을 운운하며 교사들을 압박하던 교육 당국은 결국 집단행동 예고일을 하루 앞두고 부총리 명의의 호소문을 내며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많은 초등학교가 정상수업이 어려울 것이라 보고 단축수업 등을 계획 중이어서 학교 현장의 혼란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교사들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서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단휴업 막았지만 연가는 못 막아

3일 교육부에 따르면 4일 휴업을 계획 중인 초등학교는 지난 1일 기준 전국 30곳이다. 지난달 29일 집계(17곳)보다는 늘었지만, 전체 초등학교(6286개교)와 비교하면 0.5% 수준이다. 당초 4일에 초등학교 수백곳이 휴업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으나 정부가 ‘파면·해임까지 이르는 징계’와 고발이 가능하다며 학교장을 압박했다. 강경 대응이 휴업은 상당수 막은 셈이다.

 

교사들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교사 개인의 연가·병가를 막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란 분위기가 짙다. 교사 징계 권한은 교육청에 있는데, 서울·세종·광주·충남 등 진보 교육감 중 상당수가 교사 집단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역에선 징계 부담이 적어 많은 교사가 연가·병가를 쓸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에 열리는 추모 행사도 많아 정상 출근했다가 조퇴하는 교사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선생님 중 70% 이상은 나오지 않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일부 학교는 학부모에게 “가능한 학생은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등교하지 말아 달라”고 하는 등 간접적으로 교사들을 지지하고 있다.

앞서 교육부는 교육감이 집단행동을 지지하거나 교육부의 징계 방침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감사나 고발로 대응할 수 있다며 날을 세웠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교권 회복 목소리가 큰 상황이어서 교육감에 대한 강경대응으로까지 사태가 확대되는 것은 교육부에도 큰 부담인 상황이다. 교육부는 교육감들에게 ‘방과 후 추모 행사’를 제안하는 등 ‘한목소리’를 내려고 했으나 끝내 합의에는 실패했다.

호소문 내는 부총리 4일 전국 각지에서 교사 연가·병가 투쟁이 벌어질 예정인 가운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교권 회복 및 교육 현장 정상화를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이 부총리는 “학생들 곁에서 학교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교육계 “교육부가 혼란 자초” 지적

학교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교육 당국이 4일 연가·병가·조퇴 사용 교원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 초등학교 상당수는 단축수업이나 합반을 예고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쉬는 교원이 예상보다 많으면 등교한 학생들을 정문에서 바로 하교시킬 수도 있다”고 안내했다. 또 강원의 한 초등학교는 오전 11시에 전교생을 하교시킨다고 안내하는 등 급식, 방과후 수업, 돌봄교실을 중단하는 학교도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학부모는 “점심 후 하교한다고 해 급히 반차를 냈다”며 “실제 선생님이 얼마나 쉬는지, 아이가 학교에서 뭘 하게 될지 모르는데 학교에서도 등교 후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해 답답하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맞벌이인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도 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만 등교해 교실에 덩그러니 있는 것 아니냐” 등 혼란스럽다는 학부모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에서 열린 '0902 50만 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에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많은 교사들이 참가하고 있다. 0902 50만교원 총궐기 추모 집회 미디어팀 제공

이런 상황은 교육부가 자초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징계·고발 등 자극적인 단어로 겁박해 분노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날에서야 교사들을 다독이며 수습에 나섰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장상윤 교육부 차관 주재 현장교원 간담회에 예고 없이 방문해 집단행동 자제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 부총리는 “선생님들의 절박한 외침을 들으며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잘 알게 됐다”며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대한 열망, 교권 회복에 대한 간절함이 실현될 수 있도록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연가·병가 움직임을 막기에는 한발 늦었다는 분위기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금껏 7차례나 집회를 열었는데 이 부총리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교사들을 범법자로 몰았다”며 “이제 와 이러는 것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날 호소문에선 ‘엄정대응’, ‘불법’ 등의 단어는 빠졌으나 징계 강행 의사를 철회하겠다는 입장도 담겨있지 않았다.

3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정문에 마련된 교사 A씨 추모공간을 방문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14년 차 초등교사인 A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7시께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연합뉴스

한편 4일 전국 곳곳에서는 추모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이초에 누구나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오후 3시부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참여하는 가운데 추모 행사를 연다.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라는 교사 모임은 오후 4시30분부터 국회 앞에서 추모 집회를 열기로 해 대규모 집회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