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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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살며] 여름의 끝자락에

여름의 끝자락에 대해 적고 싶다. 일본에서 8월은 특히나 중요한 달이다. 6일은 히로시마에, 9일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이며, 15일은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날이다. 12일은 1985년 520명이 사망한 일본항공 비행기 추락사고가 일어났던 날이다. 이처럼 8월은 전쟁이나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달이자, 과거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매년 반성하며 다시는 이 같은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달이다.

1년에 한 번 저승에서 조상을 집으로 모셔 대접하고, 다시 보내드리는 일본 최대 명절 ‘오봉’(15일·お盆) 역시 8월에 있다. 이 기간 민속춤인 ‘본오도리’(盆踊り)를 추거나 불꽃놀이 등 진혼이나 위령 등 저승에서 온 혼을 다스리고 위로하는 다양한 행사들을 한다. 일본은 죽은 자들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모두 부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8월 한 달 동안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영령에 감사한다.

하타 지주요 다문화사회전문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강력한 봉쇄 조치가 시행되던 시기 모국에 있던 아버지를 잃었다. 면회도 쉽지 않아 딱 한 번, 그것도 30분만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같은 나라에 살았다면 더 오래 사시지 않았을까?’, ‘옆에 있었더라면 더 보살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 깊은 사랑이,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버지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마음이었다.

필자는 지난달 오랜만에 고향을 찾았다. 홋카이도 중 가장 작은 섬인 시코쿠에는 외래종 대만 백합이 바람에 흔들리며 피어있었다. 4년 전 백합 꽃다발을 들고 만면에 미소를 띠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버지 묘석에 낀 이끼를 제외하고 물을 뿌리고 자갈 틈을 비집고 난 풀을 뽑아 아버지가 좋아했던 백합을 심었다. 촛불을 켜고 향을 붙이고 손을 모았다. 초목이 싹트고 있는 향기, 흙냄새, 저녁의 갖가지 벌레 소리, 밤의 시커먼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손이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는 보석 같은 별, 아침녘 들려오는 새들의 떠들썩한 소리. 필자가 여기에 있음을 절실히 느끼게 한다. 보는 것마다 추억이 너무 많다. 순순히 울면 좋을 것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불과 4년 남짓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없어 허무함과 억울함, 답답함, 모국에 자유롭게 갈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 한국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올해로 70년이 됐다고 한다. 이산가족이 되어 헤어져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달픔은 얼마나 될지…. 내가 팬데믹 기간 느낀 감정은 팥알처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자그마한 것일 테다. 헤어져 있는 가족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행복한 일상이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하타 지주요 다문화사회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