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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 주고 위성기술 받고… 北·러 ‘위험한 거래’ 현실화 우려 [김정은 방러]

북한이 과시한 122·240㎜ 유도 포탄
러시아軍 운용하는 포 구경과 일치

北, 2023년 연거푸 정찰위성 발사 실패
원활한 발사 기술 러에 요청할 수도

핵추진 잠수함, 수개월간 잠항 가능
北 기술 도입 땐 韓·美 감시망 치명적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위해 전용 열차에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선 북·러 간 재래식 무기와 첨단 군사기술 맞교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북·러 간 무기 거래 우려는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부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 기념일(7월27일)에 맞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방북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북한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장의 러시아군에 흘러들어 갔다는 정황은 2022년 미국 등을 통해 이미 공개된 바 있다. 다만 바그너 용병 그룹을 매개로 한 간접적 지원이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북·러 간 무기 거래 직접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4월24일 북한과 러시아 접경지 연해주 하산 기차역을 떠나면서 환송객들과 인사하기 위해 모자를 벗고 있다. 이때 김 위원장은 하산을 경유해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는데, 11일 김 위원장이 같은 경로로 이동 중인 것이 확인되면서 두 정상이 4년5개월 만에 재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북한이 러시아에 제공할 무기로 재래식 포탄과 대전차 유도 미사일 등이 꼽힌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월6일 방사포탄 공장 시찰에 나선 바 있다. 당시 북한은 122㎜와 240㎜ 포탄에 유도 기능을 부여했다고 과시했는데, 122㎜는 러시아 등 동구권의 주력 포 구경에 해당한다. 러시아군은 240㎜ 포도 운용하고 있어 북한제 포탄과 러시아 무기 간 호환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재래식 포탄을 넘기는 대가로 북한은 첨단 기술을 노린다. 미국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무기 공급 대가로 군사정찰위성, 핵추진 잠수함 등의 기술 이전을 요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지난 5월31일과 8월24일 정찰위성 발사에서 두 차례 실패한 바 있다. 1차 실패 때는 2단 엔진 비정상, 2차 실패 때는 3단 비행 중 비상폭발 체계 오류가 각각 원인으로 지목됐다. 자연히 북한 입장에선 원활한 발사를 위한 기술을 러시아에 요청할 수 있다. 다만 이는 유사 기술이 적용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추진체의 진전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정찰위성 제작 기술 역시 북한의 핵심 관심사다. 올해 5월 북한이 공개한 위성 실물의 크기와 형태를 토대로 전문가들이 추정한 해상도는 고작 3m 수준이다. 이는 군사적 목적에 턱없이 못 미친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고해상도 광학 장비를 제공하고 북한이 이를 발사체에 실어 성공적으로 궤도에 올린다면 북한은 남측 일대를 더욱 정밀하게 정찰할 수단을 갖게 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정권수립 75주년을 맞아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민방위 무력 열병식' 참가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TV가 11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핵잠수함은 김 위원장이 2021년 1월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공언한 ‘핵심 5대 과업’ 가운데 하나다. 북한은 지난 8일 ‘전술핵 공격잠수함’이라고 부르는 김군옥영웅함을 전격 공개한 바 있다. 당시 김 위원장은 “핵무기를 장비하면 그것이 곧 핵잠수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핵추진 잠수함”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보유한 잠수함은 현재 70여척 수준이지만, 1950년대에 건조된 재래식 잠수함 로미오급(1800t급) 약 20척 외엔 소형 잠수함정들이다. 최근에 공개한 김군옥영웅함은 로미오급을 3000t급으로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두고 김 위원장이 일단 이름부터 붙이고 진찌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뒤로 미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로미오급 등 재래식 디젤 잠수함은 소음이 심한 데다가 정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해서 한·미 정보자산에 의해 추적을 당하기가 쉽다. 반면 핵추진 잠수함은 몇 개월 동안 물밑에서 잠항하다가 미 본토 인근으로 접근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쏠 수 있다. 북한의 핵잠수함 보유는 곧 물속에 미사일을 장기간 숨겨둘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따라서 북한 본토는 물론이고 광활한 바다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점에서 한·미 감시망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하는 러시아는 전략 핵잠수함을 11척이나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핵잠수함 건조를 위한 소형 원자로 기술을 제공하거나, 앞서 인도에 공격 핵추진 잠수함을 임대한 것처럼 북한에도 빌려주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에 치명적이다. 장기 작전이 가능한 북한 핵잠수함의 존재는 태평양 전역의 미군을 겨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과 북·러 간 접촉을 통해 이런 우려가 현실화한다면 북한이 한·미동맹을 겨냥해 한층 높은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김예진·구현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