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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자강’에 보혁 공감대… 韓·美 원자력 협정 개정이 관건 [뉴스 인사이드-자체 핵무장론 2.0]

일부 정치인·극우 전문가 주장 벗어나
보수·중도·진보 넘나들며 긍정적 논의
‘北核 폐기 불가능’ 현실적 인식과 함께
러 우크라 침공, 韓·美 여론변화도 한몫

韓 우라늄 농축 등 제한한 협정 걸림돌
日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갖고
핵탄두 6000기 맞먹는 플루토늄 보유
전문가 “日 수준 核 능력부터 확보해야”
북한에 맞서 한국도 자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할까. 예전 같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로 치부해 무시했겠지만, 최근 관련 담론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핵자강(核自强)’이라는 기치 아래 보수는 물론 진보 성향 전문가들까지 모이면서다. 과거 핵무기 보유 담론은 ‘핵무장’을 외치는 일부 정치인과 소수의 극우 성향 전문가 범위를 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논의는 다르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을 시작으로 단계별 전략을 제시하며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 정치적 지향도 보수·중도·진보로 스펙트럼이 넓다. 학자부터 군인까지 활동 경력도 다양하다.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주도해 온 보수 전문가부터 자주적 안보 대책을 중시하는 진보 전문가까지 핵자강을 대안으로 고려하는 기류가 생겼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26일 미 워싱턴 백악관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당시 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 비핵화라는 목표와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 준수, 기존 한·미 원자력 협정 유지가 명시된 ‘워싱턴 선언’을 도출했다. 다만 원자력 협정 개정 필요성과 이를 통한 한국의 핵 잠재력 확보 논의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 같은 움직임이 반영된 대표적인 곳이 한국핵자강전략포럼이다. 이 포럼의 정성장 대표는 “포럼에는 보수가 3분의 2, 진보가 3분의 1 정도 된다”며 “극우 일부의 선동 구호로서 ‘자체 핵무장’ 대 ‘한반도 비핵화’가 맞섰던 것이 1세대 담론 지형이라면, 이제 핵 보유 담론의 새로운 장을 여는 2세대 전문가들의 논의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북한, 핵 포기 않을 것”

정 대표는 최근 핵자강포럼을 비롯한 활동과 논의를 정리해 ‘왜 우리는 핵 보유국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책을 펴냈다. 저서와 그간 논의를 종합하면 핵자강론은 ‘북핵 폐기 불가능 인정 → 남한 핵무장 → 남북 핵균형 → 남북 핵 감축 협상’이라는 논리로 요약된다.

출발점은 ‘하노이 노딜’ 이후의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다. 이들은 미국과의 협상에 실패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앞으로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 2019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당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우리는 우리 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임을 더 굳게 결심하였다”고 했다. 이어 2021년 8차 당대회부터 북한은 ‘국가 핵무력 건설 대업 완성’을 내걸고 방어적 수단인 보복 타격뿐 아니라 핵 선제 타격 능력까지 고도화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도 이런 인식을 강화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자발적으로 반납했다. 1994년 부다페스트 조약에 의해서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자국 원전 가동에 필요한 농축 우라늄을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사용 후 핵연료도 러시아로 반출해 처리해 왔다. 안전보장을 약속한 러시아는 30년도 안 돼 침공했다. 우크라이나의 오늘을 보며 북한은 더욱 핵 포기를 않게 됐을 것이라는 우려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강화된 국제사회 신(新)냉전 구조 탓에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도발을 해도 안보리의 공동 대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NPT 체제가 구조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만큼 스스로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되기도 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타스연합뉴스

한·미 여론 변화도 핵자강론의 근거다. 2021년 12월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 여론조사 결과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 국민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71%가 핵무장을 지지하고, 독자적 핵무기 개발과 미국 핵무기 배치 중 무엇을 선호하느냐는 물음에 자체 개발이 67%로 미국 핵 배치 9%를 압도했다. 독자 핵무장 찬성 비율도 국민의힘 지지층에선 81%, 더불어민주당 지지층에선 66%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왔다. 국가보훈부의 한·미동맹 70주년 기념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41.4%가 한국 독자 핵무장에 찬성하고 반대는 31.5%였다.

정 대표는 “북한 비핵화를 어렵게 하는 장애 요인이 너무 많다”며 “한·미 정부는 북핵 포기가 인도와 파키스탄에게 핵무기 포기를 시키는 것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결국 한국이 핵무장을 완료하고 북한 핵탄두 보유량을 10∼20개 이하로 줄여 사실상 ‘준(準)비핵화’를 달성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한 뒤 북한과 핵 감축 협상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핵자강론자들은 주장한다. 정 대표는 “북한의 핵 보유량이 10∼20개 이하로 줄면 북한이 방어용으로 쓸 수는 있어도 선제 공격용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워 사실상 사용할 수 없다”며 “다른 국가들로의 판매 등 핵확산 우려도 줄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반론도 만만찮다. NPT 탈퇴가 가져올 후폭풍과 현실성, 여론의 가변성 등 반박도 많다. 한 국제관계학 교수는 “핵 보유 후 감축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엄청나게 돌아가는 것인데, 그 과정에 수많은 ‘트위스트’(반전)가 존재한다”고 했다.

◆“핵 잠재력, 일본만큼 가져야”

장기적 로드맵에는 이견도 다양하나 단기 목표는 공감대가 넓다. 바로 핵 잠재력과 직결되는 한·미 원자력 협정 문제다.

한국이 미국과 맺은 원자력 협정은 일본이 미국과 맺은 협정과 비교해 제한이 훨씬 많다. 자연히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라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핵자강론자들은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확보하고 핵무장 여부는 그 다음에 고민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한·미 원자력 협정은 2015년 개정 버전이다. 미국은 한국이 우라늄 농축이나 재처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한국은 ‘미국과 사전 협의하에’라는 단서조항을 달고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만 할 수 있게 됐다. 단서조항 탓에 현실적으로는 저농축 우라늄도 확보가 쉽지 않아 원전 연료로 쓰이는 5% 저농축 우라늄 역시 전면 수입하는 중이다. 반면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안에서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은 전면 허용, 당사자 합의 시 20% 이상 고농축도 가능하게 했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차이도 크다. 한국은 전반부 공정인 파이로프로세싱 연구만 일부 가능하고 그 외엔 권한이 없어 원전 가동 후 배출된 사용 후 핵연료 저장 공간도 10년 내에 포화 상태가 될 처지다.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 부피는 20분의 1로 줄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저순도 플루토늄은 원전 연료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데, 한국은 높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점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플루토늄이 핵무기에 전용될 수 있어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반면 일본은 사용 후 재처리가 가능해 플루토늄을 쌓아 두고 있다. 미·일 협정에서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은 1968년 얻었고, 1988년 개정 때 일본 내 재처리 시설, 플루토늄 전환 시설, 플루토늄 핵연료 제작 공장 등을 두고 플루토늄을 보관할 수 있는 포괄적 동의까지 받았다. 일본이 현재 보관 중인 플루토늄은 약 50t으로 핵탄두 6000기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정 대표는 “한·미와 미·일 간 원자력 협정 수준이 판이해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부터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원자력 협정 개정에 대한 기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4월 방미 때 한 차례 크게 흔들렸다. 방미 전 윤 대통령이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첫 방미에서 우리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을 폐기한 만큼 윤 대통령도 우리 핵 능력을 제한하는 원자력 협정을 개정하지 않을지 기대가 나왔다. 그러나 워싱턴 선언은 “윤 대통령은 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공약 및 한·미 원자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했다”고 못을 박았다. 정 대표는 “가까운 미래에 북한 핵실험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국가 생존을 위한 권리들마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부분”이라며 “한국 정부 전략 부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목소리에 대해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방송에 출연해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원자력 협정을 맺어 재처리나 농축을 합법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