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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삥이 시다바리 하다 야매가 뽀록나면 쿠사리 듣는다”를 쉬운 우리말로 한다면? [우리말 화수분]

<13> “새내기가 보조(또는 보조원)를 하다 무면허(또는 불법거래)가 들통나면 핀잔을 듣는다”
국어는 한민족 제일의 문화유산이며 문화 창조의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밀려드는 외국어와 국적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등에 국어가 치이고 있습니다. 특히 국민 누구나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할 정부와 지자체, 언론 등 공공(성)기관에서 사용하는 ‘공공언어’의 그늘도 짙습니다. 세계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공공분야와 일상생활에서 쉬운 우리말을 되살리고 언어사용 문화를 개선하자는 취지로 ‘우리말 화수분’ 연재를 시작합니다. 보물 같은 우리말이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생명력을 지니도록 찾아 쓰자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편집자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일본 제국주의 시절 35년간의 식민통치를 포함해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관계로 우리의 언어 생활 곳곳에 일본어 잔재가 상당하다. 청소년을 비롯해 젊은 사람들 중에도 정확히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거나 우리말인 줄 알고 일본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 방송 예능프로그램 등에서 출연자들이 자연스럽게 그러기도 한다. 그런 일본어 중에는 본뜻에서 벗어난 국적 불명의 말로 바뀌어 사용되기도 한다. 이는 바람직한 언어 사용이 아닐 뿐더러 원활한 의사소통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무분 별한 일본어를 남발하기보다 적당한 우리말로 바꿔쓰려고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서현정 사단법인 국어문화운동본부 국장 겸 세종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이 최근 펴낸 ‘외래어 대신 쉬운 우리말로!’(마리북스)에는 우리나라에서 잘못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어 사례들이 담겼다. 주요 사례를 정리해 소개한다.

 

주유소에서 종종 사용되는 “기름을 만땅(으로) 채워주세요”란 말은 기름을 ‘가득’ 채워 달라는 의미다. ‘만땅’은 한자 ‘찰 만(滿)’과 영어 ‘탱크(tank)’를 합친 일본식 조어 ‘만탕쿠((滿タンク)’를 줄인 말이다. 정체를 알기 어려운 말 대신 ‘가득’이란 우리말을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자기만 몰래 알고 넘어가려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아주 당혹스럽다. 이런 경우에 ‘뽀록났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뽀록도 일본어에서 왔다. 일본어 ‘보로(ぼろ)’에서 온 말인데 원래 넝마, 누더기, 허술한 것, 결점 등의 뜻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감춘 일을 들키거나 숨긴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용한다. 뽀록 대신 ‘들통’이라고 뜻이 분명한 우리말을 쓰도록 하자. 

 

식당에서 가끔 “여기 앞사라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손님을 볼 때가 있다. ‘사라(さら·皿)’는 접시를 뜻하는 일본말이다. 일부 지방에서는 정착되어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데 ‘접시’라고 하면 어린 아이 등 누구나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내가 니 시다바리가?’”란 대사처럼 영화 등 영상 매체에서나 일상에서 시다바리’란 말을 종종 듣는다. 시다바리는 도배를 하기 전에 먼저 바르는 밑종이나 그 밑종이를 붙이는 일이란 뜻의 일본어 ‘시타바리(したばり·下張り)’에서 왔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보조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사용된다. 이 역시 우리나라와 일본의 사용법이 다르고 출처가 모호한 단어인 만큼 ‘보조원’이나 ‘수습직원’으로 바꿔 쓰면 뜻을 전달하기 쉽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삥(しんぴん·新品)’은 새것을 뜻하는 일본어로, 군대에 갓 들어온 신병이나 어느 집단에 새로 들어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낮잡아 가리킬 때도 쓰인다.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저속한 표현보다 사람을 가리킬 때는 ‘새내기’, 물건을 가리킬 때는 ‘신품’이나 ‘새것’으로 바꾸어 쓰도록 하자. 

 

‘야매’는 어둠을 뜻하는 ‘야미(やみ·闇)’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한 말로 뒷거래나 불법적인 거래 등을 뜻한다. 또 일본에서 무면허 의사를 ‘야미이샤(やみいしゃ·闇医者)’라고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야매라는 단어를 붙여 무자격자를 낮잡아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야매의 경우 ‘뒷거래’나 ‘불법거래’, ‘비합법’, ‘무면허’로 순화해 쓸 수 있다. 

 

직장 등에서 실수했을 때 윗사람한테 “쿠사리 엄청 들었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쿠사리’는 일본어로 ‘썩어 빠진’이란 뜻의 ‘구사레(くされ·腐れ)’라는 욕설이 변형된 말이다. 우리나라에선 상대를 언짢게 꾸짖거나 비꼬아 꾸짖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우리말이 아니어서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쉬운 말로 ‘면박’, ‘핀잔’으로 대신할 수 있다. 

 

이밖에 어린아이가 힘없이 털썩 주저앉은 모습을 뜻하는 일본어에서 가져온 ‘엔코’는 ‘연료부족’으로, 흰살생선을 잘라 두부, 채소 등과 함깨 냄비에 넣고 끓여 초간장에 찍어 먹는 일본 냄비 요리 ‘지리나베’에서 온 ‘지리’는 ‘맑은탕’으로 쓰면 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