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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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시진핑 리스크’에 멍드는 중국 경제

1인지배체제 마오쩌둥 시대 방불
공동부유 탓 부동산발 경기침체
빅테크 위축에 자본이탈도 심화
경제 망치는 이념과잉 경계해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문화대혁명 시절 겪었던 고통은 정치인생의 큰 자산이다. 시 주석은 15세 때 산시성 산골 오지 량자허로 하방당해 7년간 농민의 삶을 체험했다. 중국인들에게 시 주석은 농촌과 민중의 힘든 삶을 안다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집권 후 우상화 소재로 활용됐다. 관영 중국 중앙방송(CCTV)은 시 주석이 하방 시절 100kg의 밀을 메고 5km 산길을 갔다는 황당한 일화를 전했다. 그는 중학교 동창인 바둑기사 녜웨이핑과 함께 초기 홍위병에 가담했다고 한다. 시 주석은 “문혁 시절 마오쩌둥 주석의 어록을 읽으며 매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회고했다. 중국을 암흑기에 빠트렸던 문혁 시절 쌓았던 가치관과 경험은 시 주석의 정치사고 저변에 똬리를 틀고 있음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약 60년이 흘러 중국에 다시 문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시 주석은 1인 지배체제를 굳히며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절대권력자가 됐다. 그는 함께 잘살자는 공동부유(共同富裕)론을 주창하며 마오 주석의 공부론(共富論)도 소환했다. 공동부유론은 부동산 투기 등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민간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을 억제(국진민퇴)하는 게 핵심이다.

주춘렬 논설위원

당장 실질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에서 탈이 났다. 제2의 부동산 재벌 헝다가 2년 전 빚이 과도할 때 자금줄을 죄는 3대 레드라인(三條紅線) 규제 탓에 도산위기를 맞았는데 결국 지난달 미국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거대 부동산개발업체 완다와 비구이위안 등이 줄줄이 부도위기에 처하면서 부동산 거품붕괴가 현실로 닥쳤다. 대형 부동산신탁회사인 중룽국제신탁은 만기 도래 상품의 현금 지급을 연기했다. 수년째 이어져 온 부동산 침체가 금융부실로 번져가는 형국이다.

홍색 한파는 빅테크 기업에도 몰아쳤다. 중국 당국은 반독점과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고강도 규제를 쏟아냈다. 알리바바는 3조원대 벌금을 물었고 바이두, 텐센트, 디디추싱, 메이퇀 등도 된서리를 맞았다. 중국 부자들은 해외로 빠져나갔고 글로벌기업도 탈중국 대열에 합류했다. 외국인의 직접투자액은 작년 1분기 1031억달러에서 올 2분기 49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경제가 성할 리 만무하다. 지난해 성장률은 3%로 코로나19 첫해인 2020년을 빼곤 문혁 이후 가장 낮았다. 올 들어서도 생산과 소비, 수출 등 주요 경제지표들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중국 정부는 올해 성장률 목표치를 사실상 지난 30여년 사이 최저 수준인 5%를 제시했지만 이마저 달성이 어렵다. 청년 실업률도 올 초 17.3%에서 6월 21.3%까지 치솟았다. 중국 당국이 이후 통계를 숨기고 있지만 실제 실업률은 40∼5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시 주석은 자신의 문혁 체험을 언급하며 청년들에게 “스스로 찾아서 고통을 곱씹으라”고 한다. 도시 청년을 농촌에 보내는 신하방운동을 벌이는 진풍경까지 연출된다.

중국몽과 대국굴기를 앞세운 대외강경노선도 경제불안을 부채질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을 결집해 대중 반도체 등 첨단기술 봉쇄에 나서면서 미래성장동력마저 약화하는 양상이다. 중국 안팎에서 시 주석이 패권 경쟁 패배와 경제 실정을 만회하기 위해 대만침공을 감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실 줄 모른다.

시 주석이 자신의 친위세력인 시자쥔(習家軍)을 중용하는 인사스타일도 도마 위에 오른다. 과거에는 지방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검증된 인물이 내부경합을 거쳐 중앙 요직에 발탁됐는데 이제는 시 주석과 인연이 있거나 충성도가 높은 인사가 득세한다. 대기업 오너가 뛰어난 실적과 역량을 보인 인재 대신 비서실 측근 인사를 계열사 사장으로 뽑는 격이다. 이런 기업은 몰락할 게 자명하다.

세계 2위 경제 대국 중국의 위기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중국은 전 세계 성장의 30%, 공급망의 40%를 차지한다. 국제질서와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그 충격을 가늠하기 힘들다. 중국발 위기 쓰나미에 대비하는 전략이 절실한 때다. 윤석열정부와 정치권은 ‘시진핑 리스크’를 반면교사 삼아 지도자의 이념 과잉이 경제를 망치고 국가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곱씹기 바란다.


주춘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