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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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국주의에 함께 싸울 것” 푸틴 “北에 위성기술 이전” [북·러 정상회담]

러 우주기지서 정상회담

김정은, 러에 포탄 등 지원 관측
美에 맞서 러시아와 협력 시사
안보리 대북 제재 무력화 우려

北, 탄도미사일 2발 기습 발사

각각 미사일·핵 도발과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에서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과 러시아 정상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나 ‘제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포탄 등 무기 제공과 이에 따른 러측 위성발사 기술 이전 등이 합의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기 거래 등 군사 협력을 공식화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를 필두로 한 국제사회가 17년에 걸쳐 노력해온 대북 제재와 우크라이나 침공 관련 제재가 무력화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날 김 위원장은 회담 모두발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는 패권세력에 대항해 스스로의 권리, 안전,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의의 위업을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일관되게 러시아 정부가 취한 모든 조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후에도 제국주의와 싸움에 러시아와 함께 할 것이고 전략적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로켓 앞에서 대화 나누는 푸틴·김정은 4년5개월 만의 정상회담을 위해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앞줄 오른쪽 두 번째)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왼쪽 두 번째)이 로켓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 중인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합의하는 대신 우주 기술 이전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크레믈궁 제공

회담 후 만찬에서 김 위원장은 “러시아군과 국민이 ‘악’에 맞서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건배사를 했다. 제국주의나 악은 모두 미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또 이에 맞선 러시아와 함께 한다는 말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포탄 부족으로 고전하고 있는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하기로 합의했음을 시사한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방문이 “조·로(북·러) 관계를 ‘깨지지 않는’ 전략적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에 시급한 위성발사 기술 이전 가능성을 언급하며 화답했다. 그는 정상회담 시작 전 북한의 인공위성, 로켓 발사 지원 여부에 대한 질문에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유엔 소식 전문지인 유엔 디스패치의 마크 레온 골드버그는 지난 11일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 무기 거래가 이뤄진다면 북한의 핵 개발 야망을 막으려 했던 2006년 첫 안보리 제재 이후 17년간의 외교적 노력이 뒤집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회담을 열고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이 회담하는 것은 2019년 4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스푸트니크 제공

게다가 최근 러시아가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유엔 제재 문제를 논의할 의향을 밝히면서 기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체제 자체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러시아 매체에 따르면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30분쯤부터 1시간 30분가량 양국 대표단과 함께 확대회담을, 이후엔 통역만 배석한 일대일 회담을 약 30분간 진행했다. 기지 시찰을 포함한 3시간여의 회동을 종료한 뒤 공식만찬을 한 김 위원장은 기지 도착 4시간여 만에 이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한편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탄도미사일 2발을 기습 발사했다. 최고지도자가 해외에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을 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김예진·박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