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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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커피 어워드와 한국인의 커피 [박영순의 커피언어]

“좋은 커피라는 게 따로 있나? 내 입맛에 맞으면 좋은 것이지”라는 말은 언뜻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상술로 악용되기 쉽다. 열매가 덜 익은 탓에 맛이 영 밋밋한 커피, 과하게 볶아 몸에 유익한 폴리페놀 성분이 사라지는 바람에 특유의 산미와 단맛이 부족한 커피를 두고 ‘구수해 마시기 좋다’는 식으로 판매하는 농간이 항간에는 심심찮게 벌어진다. 커피의 품질을 맛으로 평가할 때, 서로 다른 수준의 두 가지 단계를 차례로 거쳐야 한다.

커피 생두가 태생적인 결점을 안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재배 과정과 수확한 뒤 씨앗을 골라 건조하는 가공 과정에서 커피가 지녀서는 안 될 요소에 오염됐는지를 가려내는 것이다. 사과를 고를 때 썩거나 흠집 난 것을 걸러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한 잔에 담긴 커피의 품질은 마시는 사람들의 문화와 관습, 인종 등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케냐 루이루연구소의 커피 품질 평가 현장.

그러나 한 잔에 담긴 커피는 사과처럼 원재료를 눈으로 보며 살필 수 없기 때문에 맛으로 결점을 잡아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커피 향미를 통해 결점을 찾아내는 것은 사실 전문가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결점이 없는 정상적인 커피를 반복해 시음하면서 커피의 본질적인 맛을 파악할 수 있게 되면 결점은 마시는 순간 자연스레 걸러지는 법이다.

커피 재배 및 가공 과정에서 빚어지는 결점은 대부분 곰팡이나 박테리아의 오염에 따른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생물의 번식으로 인해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면 ‘부패한 것’이라고 해서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먹을 만하다면 ‘발효의 산물’로 보고 기꺼이 섭취한다. 발효의 결과물은 몸에 이롭기 때문에, 우리는 심지어 다소 자극적이기도 한 신맛을 추구하기까지 한다.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온갖 물질이 가득한 자연 속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몸에 해로운 것은 뱉어내도록, 다른 한편으로 유익한 것은 관능에 따라 계속 추구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므로 살아남은 인류는 모두 코와 입으로 커피의 결점을 알아챌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다. 다만 전문가의 경우 커피를 마실 때 몸에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를 거듭 관찰하면서 좋은 커피의 향미적 속성을 관능에 새겨 두었다는 점에서 다소 다를 뿐이다.

밥에 살짝 모래 먼지가 날리고, 숙주나물이 조금 쉬기만 해도 우리는 기가 막히게 이를 알아챈다. 정상적인 맛을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커피가 지닌 결점을 전문가처럼 가려내려면 결점이 있는 커피를 마시지 말고 좋은 커피를 반복해 음미할 일이다.

두 번째 단계는 결점을 가려낸 커피를 놓고 향미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영역이다. 잘 익은 열매만을 골라 가공한 커피 생두에는 몸에 유익한 성분이 가득 차 있다. 그런 사실은 마땅히 우리의 관능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를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입안에서 피어나는 향기의 양, 혀와 점막에서 감지되는 감미로움, 목뒤로 넘긴 후 긍정적인 면모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등을 음미하면서 씨앗에 농축된 유효 성분들의 양을 가늠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는 향미 성분을 정량적으로만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성분들이 몸에서 어떤 기분을 들게 하느냐는 정성적인 속성으로 우위를 가린다. 이 단계에서 음용자의 기호도와 선호도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좋은 커피가 무엇인지를 가리는 최종 단계에서는 ‘인구통계학적 요인’이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 한마디로 한국인에게 맛 좋은 커피는 한국인이 뽑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실 커피에 대한 평가를 외국의 유명 단체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10월 시흥시에서 열리는 ‘경기도 세계커피콩축제’에 ‘K커피 어워드’가 국내에서 처음 진행되는 것은 반길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