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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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의울림] 싹 비워진 라면 그릇… 벽지엔 ‘마음’이 빼곡

길가 쪽 식탁 위엔 다 먹은 라면 뚝배기와 빈 밥공기 하나씩만 남았다. 저녁이라기엔 애매한 시간 또 누군가 한 끼를 때우고 빈 그릇을 남겼다. 경민, 상곤, 세정, 선규, 병헌은 더 이상 적을 곳이 없는지 붙박이 나무 식탁 위에 이름을 적었다. “누구야 사랑한다”, “열심히 살자”, “이제는 세 맘이 되어”, “로또 당첨자 1등 26억” 별별 글들이 하얀 벽지를 장식하고 있다. 회사 근처 라면집 풍경이다. 하얀 벽지는 손님들의 흔적들로 빼곡하다. 새까맣다. 손이 닿지 않는 위쪽만 하얗게 남았다. 배고픈 사람들은 이곳에서 한 끼를 채울 테고 벽지는 계속해서 까매질 거다. “음식 값은 손님들께서 계산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빠르고 정확하겠지요. 감사합니다.” 셈을 치르고 가게를 나섰는데 주인의 메모가 마음에 남아 있다. 다음엔 얼마치 먹었다고 먼저 말을 해야겠다. 그냥 일상이다.


허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