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기자가만난세상] '여섯째'를 임신한 여성의 영아살해

‘여섯째를 임신 중이라고?’ 귀를 의심했다.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에서 생후 1일 된 영아 두 명을 살해해 수년간 냉장고에 보관한 사실이 밝혀져 구속수감된 30대 친모 A씨의 얘기다. 지난 11일 재판에서 이 사실이 공개됐다. 변호인은 남편 B씨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B씨는 두 번의 조사에서 모두 불송치됐다.

 

A씨에게는 영아살해가 아닌 살인 혐의가 적용돼 있다. 출산과 범행 사이 약 29시간의 간격이 있어 분만 직후(통상 24시간 이내)라 보기 어렵고, 출산 다음 날 일상 활동을 했기 때문에 “분만 자체로 인한 정신적 불안정 상태가 해소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반면 B씨는 살인 방조 혐의를 벗었다. 6명의 아이를 갖는 동안 아내의 몸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몰랐다”고 한 그는 ‘몰랐으니까 잘못이 없는’ 사람이 됐다.

정지혜 사회부 기자

“애 안 낳는 것도 모자라 죽이기까지 한다니 얼마나 괘씸하겠어요.”

 

요즘 자주 듣는 말이다. 아기 한 명이 너무나 귀한 초저출생 시대에 아이를 낳자마자 자기 손으로 살해하다니! 출생미등록 상태로 생을 마감한 아동들의 이야기에 지난 수개월간 세상은 공분했다. 분만 직후 불안한 여성의 상태를 참작하는 영아살해죄를 폐지하고 일반 살인죄를 적용하는 법안이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엄벌주의로 본을 보여야 마땅한 중한 일이라는 인식에서다.

 

사회적 분노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분명 무언가 빠진 것이 있었다. 이상함이 감지되는 부분의 출처를 찾아나서 보기로 했다. 세계일보 사건팀이 특별기획 시리즈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세계일보 2023년 9월 11∼13일자 참조> 취재에 들어간 배경이다.

 

먼저 공식적인 기록을 살폈다. 희생된 영아 관련 기사들, 국내 영아유기·살해 판결문 최근 10년치 250건, 수사 기관의 처리 과정을 들여다보며 계속 드는 의문은 ‘아이는 여자 혼자 만드나?’였다. 온통 친모에 대한 얘기밖에 없었다. 엄마와 아기가 비극적 운명을 맞는 동안 아빠는 어디서 뭘 했는지 어디서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걸 묻는 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영아살해 기사를 공유하는 일부 독자들뿐이었다.

 

각자 할당된 기간의 판결문을 분석하며 팀원들이 남긴 메모에는 ‘남자친구는 왜 기소가 안 됐지?’, ‘생부는 왜 처벌을 안 받았지?’ 등이 있었다. 기록 속에서 엄마들은 혼자 아이를 ‘짠’ 하고 만들고는 마녀로 돌변해 참혹하게 버린 모양새였다.

 

열악한 환경에서 출산 및 육아를 하는 미혼모들, 영아유기·살해 당사자 관련 인터뷰, 전문가 좌담회 등에서도 이는 계속해서 관통하는 문제의식이었다. 아이를 만들 때는 50%의 지분을 차지한 남성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는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판결문 분석을 통해 영아유기·살해 사건 70.6%에 이런 ‘유령아빠’들이 있음을 발견했다.

 

입양이나 낙태를 종용하는 남성을 뒤로하고 아이를 책임지는 선택을 한 여성을 우리 사회는 진심으로 지지하는지, 모든 여성의 출산이 축복이자 기쁨이 되는 사회인지 돌아보게 된다. ‘이 정도면 아이 안 낳는 게 가장 안전하지 않으냐’는 여성들의 물음에 지금 사회는 어떻게 답하고 있나.


정지혜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