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와 가라테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유도와 레슬링 중 어느 종목이 더 강할까? 요코즈나(스모 챔피언)가 천하장사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유치하지만 한 번쯤 해봤던 상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종합격투기(Mixed Martial Arts·MMA)라고 불리는 무대 위에서다. 여기에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는 물론 각종 국제대회에서 이름을 알린 선수들이 도전장을 내민다. 잔인하다는 논란 속에서도 MMA는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원초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MMA의 시작
스포츠로서의 MMA는 고대 올림픽에서도 행해졌을 정도로 오래됐다. ‘팡크라티온’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MMA는 물기와 눈 찌르기만 금지됐을 뿐 한쪽이 항복할 때까지 경기를 진행했다.
MMA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20세기 초반 브라질에서다. 브라질에서 무규칙 격투기 이벤트인 발리투도가 흥행했고, 일본의 ‘고류무술’을 계승해 1950년대 브라질리언 주짓수(BJJ)를 탄생시킨 그레이시 가문이 BJJ를 홍보하기 위해 카포에라나 가라테, 킥복싱 등 다른 격투기 고수들과 경기를 벌이면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MMA는 일본과 미국에서도 싹트기 시작했다. 1993년 일본에서는 판크라스가, 미국에서는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가 나란히 첫 대회를 열었다. 판크라스는 일본의 프로레슬링 단체 UWF(Universal Wrestling Federation)에서 나온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설립됐다. 첫 대회에서 5경기가 열렸는데 경기 시간은 13분에 불과할 정도로 화끈했고, ‘초살’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UFC에서는 권투나 레슬링 등이 가장 강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자신보다 덩치가 큰 선수들을 호이스 그레이시(브라질)가 BJJ로 조르고 꺾으며 첫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지만 MMA를 지켜보는 시선은 따가웠다. 그럴 만했다. 특히 UFC는 글러브도 끼지 않은 채 룰과 체급의 제한 없이 8각의 철창 경기장(옥타곤)에서 겨뤘다. 고(故) 존 매케인 전 미국 상원의원은 “인간 닭싸움”이라며 “투견 등은 제한하면서 인간이 싸우는 건 왜 막지 않느냐”고 UFC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포츠로 진화해 가는 MMA
잔인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MMA에 대한 관심은 끊이지 않았고 다양한 단체가 등장했다. 이 가운데 프라이드FC는 UFC와 세계 격투기 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큰 단체로 성장했다. 프라이드FC는 이렇게 탄생했다. UFC에서 우승한 호이스와 싸워 보겠다며 1994년 UWF 출신인 안도 유키(일본)가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호이스의 형인 힉슨 그레이시에게 완패했고, 안도의 스승인 다카다 노부히코(일본)가 힉슨을 일본으로 불러 자존심을 걸고 싸워 보자는 뜻으로 개최했다. 일회성 이벤트로 제작된 프라이드FC가 대흥행을 거뒀고, 대회는 이어졌다. 반데를레이 시우바(브라질)나 미르코 ‘크로캅’ 필리포비치(크로아티아), 표도르 예밀리야넨코(러시아) 같은 슈퍼스타들이 등장하며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때 UFC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유료방송에서 퇴출된 UFC가 체급과 규칙을 정하면서 스포츠로서의 틀을 갖추게 됐고, 파이터 오디션 프로그램인 TUF(The Ultimate Fighter)가 흥행에 성공했다.
격투기 시장을 미국이 주도하게 된 건 프라이드FC가 몰락하면서부터다. 2007년 프라이드FC가 야쿠자와 연계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중계가 끊어졌다. 자금난을 버티지 못한 프라이드FC는 UFC에 매각됐다. 프라이드FC에서 뛰던 파이터들까지 흡수한 UFC는 선수층이 두꺼워졌고, 자연스럽게 아시아 팬까지 빨아들이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단체로 우뚝 섰다.
이후 UFC는 승승장구한다. 옥타곤에는 헤비급 브록 레스너(미국)나 여성 파이터 론다 로우지(미국), 또 ‘악동’ 코너 맥그리거(아일랜드)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했다. 규제도 완화됐다. 미국 경제의 심장 뉴욕주에서 MMA 합법화가 이뤄졌다. UFC는 2016년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 옥타곤을 설치하면서 날개를 달게 됐다.
◆한국인 파이터의 MMA 도전기
국내에서 MMA 붐을 일으킨 건 2000년대 중반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이었다. 최홍만이 일본 입식단체 K-1에서 수많은 강자와 싸우며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요코즈나 아케보노와 대결을 펼치며 부와 명예까지 얻게 됐다. 이후 수많은 국내 엘리트 체육인이 MMA에 뛰어들었다. 천하장사 출신의 김영현과 이태현이 샅바를 놨고, 백두급 김동욱과 김경석도 일본 MMA 무대에 진출했다. 1996년 애틀랜타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민수와 비운의 유도스타 윤동식, 레슬링 국가대표 최무배, 투포환 김재일도 파이터로 변신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대회 홍보를 위한 카드로 사용됐을 뿐 MMA에 큰 업적을 남기진 못했다.
코리안 파이터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김동현부터다. 일본 무대를 휩쓴 김동현은 2008년 UFC에 진출해 2017년까지 13승4패1무효를 기록한 뒤 잠정 은퇴했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은 UFC와 WEC(World Extreme Cagefighting)가 합쳐지면서 옥타곤에 입성했고 화끈한 경기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2연패에 빠진 뒤 ‘챔피언이 될 수 없을 것 같다’며 은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