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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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유전자 작동, DNA 아닌 경험이 좌우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데이비드 무어/정지인 옮김/아몬드/2만9000원

 

영국의 옥스퍼드대의 생물학 교수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를 통해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유전자에 프로그래밍이 된 대로 산다는 소위 ‘유전자 결정론’이다.

데이비드 무어의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는 도킨스의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하는 책이다.

데이비드 무어/정지인 옮김/아몬드/2만9000원

많은 이들이 지능, 유머, 음악적·미술적 재능, 눈동자의 색깔 등이 유전자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는 절반만 맞는다. 지난 60년간 생물학에서 진행된 거의 모든 연구의 밑바탕인 신다윈주의 종합설은 우리가 살면서 획득하는 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후성유전’의 대물림 현상이 발견되면서 주류 유전학의 기반은 흔들리고 있다.

여기서 후성유전이란 다양한 맥락이나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혹은 비활성화되는 방식을 말한다. 쉽게 말해 유방암과 관련된 유전자를 갖고 있다면 유방암이 발병할 위험성이 높지만, 이 유전자로 인해 암이 발생할지 안 할지는 여러 상황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우리가 어떤 유전자를 가졌는지에서 유전자가 무엇을 하는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책은 후성유전학이 무엇인지,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이며 이 학문이 앞으로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짚는다. 후성유전학이 유전적으로 더 좋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주지만 해답은 아니라는 한계 역시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어떤 아기가 어른이 되었을 때 얼마나 똑똑할지 알고 싶다면,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