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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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돼지(문돼)’를 아시나요”…미디어 속 ‘양아치 패션’에 소비자는 유쾌, 브랜드는 울상? [미드나잇 이슈]

“선뜻 구매하기에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죠.”

15일 기준 유튜브 채널 ‘별놈들’의 ‘문돼의 온도’ 1화 영상 누적 조회수는 317만회이고, 총 36개 영상은 모두 조회수 100만회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영상크리에이터 나선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서울시 은평구에 사는 20대 후반 직장인 원모(27)씨는 오래된 지갑을 바꾸고 싶어 알아보는 중이다. 그러나 몇몇 명품 브랜드는 피한다. A씨는“명품 브랜드는 오래 사용할 생각으로 소비하는 품목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며 “지나치게 유행하거나 미디어에 소위 ‘문신돼지’라고 불리는 분들이 자주 들고 나오는 브랜드는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분들이 많이 사용하는 지갑, 클러치 등을 제가 들고 다니면 저도 그렇게 보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딱 붙는 구찌 티셔츠에 형광 반바지. 옆구리에는 클러치백을 끼고 있다. 최근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고 있는 ‘문신돼지 패션’이라고 불리는 모습이다. 유튜브 채널 ‘별놈들’에선 ‘문돼의 온도’라는 콘텐츠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5월에 개봉한 1000만 관객 영화 ‘범죄도시3’에선 배우 고규필이 연기한 ‘초롱이’ 캐릭터가 대중에게 주목받았다. 초롱이 캐릭터 역시 비슷한 패션을 입고 있다. ‘브랜드 평판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짐작도 있지만 ‘패션의 다양성일 뿐’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5년 전 ‘동네 양아치 문신돼지충 특징’이라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였다. 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미디어 속 ‘양아치 패션’

 

유튜브 콘텐츠 ‘문돼의 온도’ 첫 영상 게시일은 지난해 4월이다. 하지만 온라인상에는 5년 전부터 이와 관련된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나이는 20~32살까지 다양함 ▲몸무게는 90~140kg ▲패션은 언더아머 티셔츠, 톰브라운, 몽클레어, 금목걸이 등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 글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그 화제성으로 ‘문돼의 온도’ 영상도 큰 인기를 끌게 됐다. 이날 기준 1화는 누적 조회수 317만회고, 총 36개의 영상 중 조회수 100만 이하의 영상이 없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인기의 기세는 영화 범죄도시3의 초롱이가 이어받았다. 범죄도시3은 5월 31일 개봉해 32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국내 개봉 영화 중 30번째로 1000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다. 극 중 배우 고규필이 연기한 초롱이는 배우 마동석이 맡은 경찰 마석도에게 쩔쩔매는 건달이다. 7월에는 ‘SNL코리아 시즌4’에 호스트로 출연해 ‘문돼의 온도’ 유튜버 나선욱과의 깜짝 만남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속 장면. 주인공 에그시가 입은 패션이 깔끔한 정장과 대비된다. 마브 필름스 제공

◆버버리는 모자 생산 중단하기도

 

과거 영국에서도 브랜드 이미지 실추로 고충을 겪었던 브랜드가 있다. 바로 영국 명품 브랜드 버버리(Burberry)다. 버버리는 차브(chav)족이 즐겨 착용하는 브랜드 중 하나였다. 차브족은 영국 하층민 출신 비행 청소년 집단을 뜻한다. 그들은 고급 브랜드를 입고, 상류층 문화를 저질스럽게 즐기는 영국판 동네 양아치이다. 이 때문에 버버리는 차브족이 자주 착용하는 제품 생산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킹스맨에서도 차브족 패션을 찾아볼 수 있다. 배우 태런 에저튼(Taron Egerton)이 연기한 주인공 에그시는 작중 초반 야구모자와 헐렁한 재킷을 입고 등장한다. 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가 연기한 스승 해리의 깔끔한 테일러링 정장과는 정반대의 반항적인 이미지로 전형적인 차브패션이라고 할 수 있다.

 

차브 패션은 커다란 로고가 새겨진 브랜드 셔츠와 버버리 야구모자, 큰 펜던트의 목걸이, 링 귀걸이, 트리이닝 팬츠 등이 특징이다. 차브족의 불량한 품행과 게으르고 나태한 이미지는 동시에 그들이 착용한 브랜드의 평판을 떨어뜨렸다. 결국 버버리는 대표 상품인 체크무늬 야구모자 생산을 중단했다. 다른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 역시 차브족이 즐겨 신는 검은색 운동화의 영국 판매를 멈췄다.

영화 ‘범죄도시3’에서 배우 고규필이 연기한 배역 ‘초롱이’. 배우 마동석이 맡은 형사 마석도에게 쩔쩔매는 건달 역할이다. 배우 고규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갈무리

◆“또 다른 매력이 될 수도 있지 않나?”

 

인천시 거주 중인 20대 직장인 윤모(29)씨는 패션의 다양성을 중시한다. 윤씨는 “‘양아치 이미지로 브랜드가 악영향을 받는다’는 여론에 패션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 같다”면서 “오히려 가지고 싶거나 착용하고 싶은 아이템을 눈치가 보여 구매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브랜드 측에서 수익이나 평판이 떨어질 것을 걱정한다면 특정 상품만을 생산 중단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 현상을 긍정적인 관점으로 봤다. 이 교수는 “‘양아치스러움’으로 소비자에게 재미를 줄 수도 있다”면서 “해당 이미지를 모티브로 새롭고 독창적인 고급스러움을 표현한다면 소비자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고 전했다. 또 그는 “길거리에서 넘어온 문화가 음악과 패션에 영향을 주듯이 명품 브랜드도 새롭고 독특한 시도로 풀어낸다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명품 브랜드에서도 젊은 감각을 가미하지 않으면 고리타분하고, 품격은 있지만 지루한 이미지만 남을 것”이라면서 “품격과 독특한 매력이 결부되려면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재미를 추가해야 된다”고 덧붙였다.


김지호 기자 kimja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