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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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집값과 딴판이던 ‘그 통계’…文정부, 국가통계에 손댔나

감사원, 국토부·통계청 감사

“靑·국토부, 부동산원 압박”
장하성·김상조·김현미 등
범죄 혐의 22명 수사 요청

대통령실 “충격적 국기문란”
文정부 인사들 “감사 조작”

2020년 ‘7·10 대책’ 한달 후 靑회의 발언
당시 “시장과 동떨어진 평가” 비판 쇄도
논란 커지자 靑 인사들 전면 나서 ‘엄호’

감사원은 15일 국토교통부·통계청 등을 대상으로 주요 국가통계 작성·활용 실태 감사를 벌인 결과 문재인정부 시절 주택·가계소득·고용 부문 전반에서 이뤄진 통계 조작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통계법 위반·직권남용·업무방해 등 범죄 혐의가 확인된 문재인정부 인사 22명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왼쪽부터 장하성, 김수현, 김상조, 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여기엔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장표 전 경제수석, 황덕순 전 일자리수석 등 청와대 참모와 함께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강신욱 전 통계청장 등이 포함됐다. 이 밖에 범죄 혐의가 의심되는 7명에 대해서도 수사참고자료를 송부했다. 이들까지 더하면 총 29명이 수사 기관의 판단을 받게 될 전망이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은 이날 감사원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청와대와 국토부 등은 통계청과 한국부동산원(구 한국감정원)을 압박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거나 통계서술정보를 왜곡하게 하는 등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청와대·국토부가 2017년 6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최소 94차례 부동산원 통계 작성 과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부동산원으로부터 확정치(7일간 조사 후 다음 날 공표) 외에 작성 중 단계인 주중치(3일간 조사 후 보고)·속보치(7일간 조사 즉시 보고)를 사전 제공받았고, 집값 상승률이 낮게 나오도록 주중치에 임의의 가중치를 적용하는 등 조작했다는 것이다.

최달영 감사원 1사무차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뉴스1

감사원은 청와대가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소득과 분배, 고용 통계도 매만졌다고 봤다.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 제시 이후인 2017년 1분기 소득분배지표가 악화하자 통계청에 원인을 수차례 분석·보고하도록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통계와 관련해서도, 청와대는 2019년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때 비정규직 급증이 예상되자 통계청이 언론에 ‘병행조사에 따른 비정규직 증가 효과가 35만∼50만명’이라고 설명하도록 지시했고 실제 보도자료 문구에도 삽입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충격적인 국기문란이 실체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됐다고 하니 책임 소재가 밝혀질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이날 입장을 내고 “국가 통계와 관련한 감사 중간 결과 등으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 통계 작성·공표 등 모든 과정에서 중립성과 투명성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와 장관 등을 지낸 인사 모임인 ‘사의재’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 정부 통계 조작이 아니라 현 정부의 감사 조작”이라며 “감사원이 문제 삼은 모든 사안은 시장 상황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었다”고 반박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연합뉴스

◆“집값 상승세 진정 양상” 文 발언… 왜곡된 부동산 통계 때문이었나

 

“집값 상승세가 진정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8월10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종합대책의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과열 현상을 빚던 주택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주택공급확대 태스크포스(TF) 운영, 청약제도 개선, 전월세 자금지원 확대 및 이자 인하 등 조치를 담은 ‘7·10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은 공개되자마자 반발을 샀다. 부동산 시장에선 “대책 효과를 평가하기엔 너무 이르다”, “시장과 동떨어진 평가다”, “대통령은 별나라에 사는 거냐” 등 지적이 나왔다. 당시 야당에서도 “대통령 본인이 감이 없다”(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청와대는 신문도 안 보고 여론 청취도 안 하냐”(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등 비판이 쏟아졌다.

 

논란이 컸던 건 유사한 발언이 이전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전년 12월에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에 대해 언급하면서 “지난번 부동산 정책으로 상당히 안정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2·16 부동산 대책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 규제 강화, 초고가 주택 주담대 금지, 규제지역 주택처분 및 전입 기한 단축 등을 담은 것이었다.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에서 바라본 서울 강남구의 아파트 단지. 뉴스1

당시 집값을 둘러싼 문 대통령의 ‘별나라 발언’ 배경에 결국 인위적으로 왜곡된 집값 통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평가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감사원이 15일 문재인정부 시절 청와대·국토교통부가 통계 작성 기관인 통계청·한국부동산원(구 한국감정원)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해 통계 수치를 조작하는 등 불법 행위를 확인했다고 발표하면서다.

 

2020년 8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중 문 대통령의 ‘집값 상승세 진정’ 발언에 대한 논란이 확산하자 청와대 인사들이 전면에 나서 엄호하기도 했다. 이번에 감사원이 수사 요청한 김상조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은 문 대통령 발언 다음 날 직접 방송에 나와 부동산원 집값 통계를 인용하며 “강남 4구 주택 가격은 사실상 제로에 근접할 것”이라고 했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도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부동산원 매매가격지수 통계를 인용하면서 문 대통령 발언을 직접 해명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이들이 인용한 부동산원 통계 또한 당시 청와대·국토교통부의 부당한 영향력이 개입된 결과물로 보인다. 실제 한 달 전 7·10 대책을 내놓은 이후 서울 집값 수치가 개선되는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해 7월14일 청와대 측이 국토부를 질책했고 국토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수치 조정을 요구했다는 내용이 이날 감사원 발표에 담겼다.


김승환·김병관·이현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