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의 즉위 5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장장 70년간 왕위를 지킨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2022년 타계)과 비교할 것은 못 되지만 그래도 이웃나라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2세 여왕(재위 51년)에 이은 유럽의 두 번째 장기집권 군주다.
16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칼 구스타프 16세는 이날 부인 실비아 왕비와 함께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스톡홀름 중심가를 누비는 것으로 최근 며칠 동안 이어진 즉위 50주년 기념행사를 마무리했다. 국왕 부부가 탄 마차가 시내를 지나는 동안 시민 수천명이 길 양옆에 늘어서 환호를 보냈다.
이날 마차 행진은 일종의 거리 콘서트처럼 진행됐는데 ‘아바’(ABBA)의 히트곡을 비롯해 국왕의 재위 기간 중 유행했던 노래들이 흥겁게 울려퍼졌다고 dpa 통신은 전했다.
하루 전인 15일 오후에는 스웨덴과 가까운 북유럽 각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왕궁에서 성대한 기념 만찬이 진행됐다.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 소냐 하랄센 노르웨이 왕비,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구드니 요하네손 아이슬란드 대통령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스웨덴 왕실을 대표해 차기 왕위 계승권자인 빅토리아 왕세녀가 국왕을 기리는 연설을 했다. 칼 구스타프 16세를 ”폐하이자 친애하는 아버지”라고 부른 빅토리아는 “50년간 스웨덴의 국왕이셨으며 저에겐 늘 롤모델(role model)이셨다”고 찬사를 바쳤다. 이어 “국왕께선 저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늘 한결같고 안온한 분이셨다”고 덧붙였다.
칼 구스타프 16세는 1946년생으로 현재 77세다. 1948년 태어난 찰스 3세 영국 국왕보다 두 살 더 많다. 1973년 9월 15일 당시 27세의 젊은 나이로 즉위했을 때만 해도 경험 부족 탓에 ‘국왕 역할을 하는 게 영 어색하다’는 지적을 들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이제는 국민의 존경과 감사를 받고 있다.
그는 총각으로 국왕이 되어 1976년에야 결혼했다. 지금의 실비아 왕비와 1972년부터 약 4년간 연애한 끝에 혼례를 치를 수 있었다. 여기엔 애절한 사연이 있다. 칼 구스타프 16세는 아직 왕세자 신분이던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에 참가 중인 스웨덴 대표선수단을 격려하러 갔다가 운명처럼 독일 여성 실비아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스웨덴 왕실은 ‘왕자가 왕족이나 왕족에 견줄 만큼 신분이 높지 않은 여성과 결혼하면 왕위계승권을 내놓아야 한다’는 엄격한 규율을 갖고 있었다.
부친을 비롯해 모든 왕실 구성원이 그에게 실비아를 단념하고 왕족과 결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칼 구스타프 16세는 “실비아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텼다. 이듬해인 1973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그가 스웨덴 국왕 자리를 계승하면서 비로소 기회가 왔다. 관련 규정들을 고치고 의회의 승인까지 얻은 끝에 1976년에야 칼 구스타프 16세는 실비아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슬하에 1남 2녀 그리고 8명의 손주를 두고 해로하는 중이다.
즉위 50주년을 맞아 그는 반세기 가까이 자신을 곁을 지킨 실비아 왕비에게 헌사를 바쳤다. 칼 구스타프 16세는 기념 연설 도중 실비아 왕비를 가리켜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좋은 반려자는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