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 법인입니다.”
가상자산(코인) 관련 기업 취재를 해 본 기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말이다. 기업들이 이런 입장을 표하는 맥락은 대동소이하다. 자회사·해외법인·제휴법인 형태로 존재하는 기업의 관계사가 어떤 문제에 휘말렸을 때, 해당 기업과의 관계에 선을 긋기 위해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유명 기업은 한국에, 문제가 된 기업은 해외에 있다는 점이다.
지난 두 달간 싱가포르에 관계사를 둔 국내 코인 기업들을 취재하면서도 이 같은 ‘별도 법인’ 공식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국내 코인업계를 대표하는 A기업은 싱가포르에 있는 동명 기업에 대해 “제휴만 맺은 별도 법인”이라고 주장했다. 해당 기업의 페이퍼컴퍼니 의혹을 제기하자 받은 답변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 ‘관계사’의 ‘관계’다. A기업은 “싱가포르 기업과 법인이 다르다”거나 “제휴만 맺었을 뿐, 지분을 소유한 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싱가포르 기업의 이름으로 해명을 보내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였다. A기업은 어떻게 ‘제휴만 맺은’ 기업을 대변해 발언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 건지, 그 제휴 기업은 어떻게 이를 용납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A기업은 양호한 편일지 모른다. 국내 유명 코인사 B기업은 싱가포르에 있는 동명 기업과 어떤 관계인지 묻자 “확실하지 않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이어 “관계사가 너무 많아서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무책임한 설명이 뒤따랐다. 관계사가 어떤 기업인지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할 정도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이 사업을 확장할 때는 이익과 위험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위험보다 이익이 더 크다는 판단하에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B기업이 셀 수 없을 만큼 관계사를 늘려간 건 관계사가 초래할 위험의 크기가 그만큼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많은 관계사를 두어도 그로 인해 기업이 위험에 빠질 확률은 희박하다고 계산했을 테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별개의 분리된 법인”이라면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관계사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그리 작지 않을 수 있다. 코인·법조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규제가 허술한 해외에 관계사를 설립해 비자금 조성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최근 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이 “카카오가 싱가포르에 있는 코인 회사를 통해 자금 세탁을 했다”며 서울남부지검에 고발장을 접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보는 건 일반 투자자들이다. 경제민주주의21은 고발장에 “(카카오가) 취한 부당이득이 수조원에 달합니다. 그 돈은 모두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입니다”라고 적었다. 지금도 누군가는 코인에 투자하고 있고, 누군가는 코인 관계사를 둔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들의 투자금은 합법적이고 윤리적인 틀 안에서 운용될까.
금융 당국이 코인 문제에 손을 놓은 사이 무법지대가 된 코인 판은 범죄의 온상이 됐고, 수많은 코인 사건이 사법 당국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사법 당국이 관계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이상 ‘별도 법인’ 공식은 앞으로도 통용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