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세계 생산량 70% 틀어쥔 中, 광물 무기로 ‘新식민주의’ 우려 [희토류가 패권경쟁 승패 가른다]

(중) 중국의 노림수는 뭔가

반도체·배터리·첨단 무기의 핵심소재
광산 확보·채굴·정제·가공 모두 장악
신기술 개발·자원 선점에도 더욱 박차
신규 광물·광산 계약 상반기만 13조원

경제공동체 ‘브릭스’ 회원국 확장 주도
6개國 추가… “세계 희토류 72% 보유”
서방제재 맞서 희토류 수출통제 ‘만지작’
망간·흑연 등 다른 광물로도 확대 촉각

반도체·배터리·첨단 무기의 핵심 소재 희토류를 틀어쥔 중국은 미국 등 서방의 이탈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만 서방의 제재에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만지작 거리는 등 아직까지는 공세적인 자세다. 관련 기술 개발과 광물 투자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런 중국의 자신감은 희토류 광산 확보부터 채굴, 정제, 가공 등 모든 밸류체인(가치사슬)을 장악하고 있다는 데서 나온다.

18일 미 지질조사국(USGS) 등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기준 희토류 매장량은 4400만t에 달한다. 세계 전체 매장량의 3분의 1 이상 물량이다. 생산량 점유율 역시 지난해 70%를 기록하며 2위 미국(14%)을 크게 앞섰다.

서방 견제에 맞선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협의체)라는 매개를 통해 더욱 진화할 전망이다. 지난 8월 남아공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브릭스는 기존 회원국에 아르헨티나와 이집트, 에티오피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를 추가 가입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들 나라는 세계 매장량 중 70% 이상을 가진 희토류 부국이다. 희토류 생산량 다수를 차지한 ‘국제 깡패 국가’ 중국과 러시아가 이런 브릭스를 주도하는 것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제15차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 참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왼쪽부터)이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로이터연합뉴스

◆여전히 희토류 경쟁 ‘배턴’은 중국 손에

중국은 미국이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희토류 개발에서 손을 뗀 뒤 장악력을 키웠다. 미국은 1980년대까지 희토류 생산 1위 국가였지만 인건비가 오르고 환경오염에 대한 규제가 강화하면서 영향력이 줄었다. 그 빈자리를 중국이 채운 것이다.

희토류 채굴업은 애초에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산업이기도 하다. 현재 기술력으로는 희토류 채굴·가공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희토류는 일부를 제외하면 지표면에 비교적 풍부하게 매장돼 있다. 하지만 추출이 어려워 이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다량의 독성 폐수가 흘러나오고 방사능 오염수가 발생해 주변 환경에 해악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장악한 희토류를 두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미국이 희토류에서 중국을 따라잡으려고 계속 노력 중이지만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평가했다.

매체는 희토류에 대한 전 세계의 경쟁이 릴레이 경주라면 중국은 1980년대에 배턴을 잡고 달아났으며, 미국은 한때 업계 선두주자였지만 다른 국가들과 함께 뒤처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희토류 원료 부품이 들어가는 전기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희토류 자문사인 스리컨설팅의 제임스 케네디 사장은 “전기차가 미래의 교통수단이 된다면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이 설 자리는 별로 없을 것”이라며 “중국은 계속해서 자신의 (희토류 장악) 위치를 활용해 점점 더 많은 부품을 중국에서 생산하고 더 많은 부가가치 시스템을 생산하고, 완성차를 생산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기술 개발·추가 자원 선점에도 박차

중국은 희토류 채굴과 생산에 대한 신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과학자들이 풍화 지각형 희토류를 전기 구동 방식으로 채굴하는 기술을 개발해 회수율과 회수 시간을 개선하는 데 성공했다고 17일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풍화 지각형 희토류는 중국의 특징적인 자원이지만 현재 보편적으로 쓰이는 암모늄-소금 기반 침출 기술은 회수율이 낮고 심각한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

이에 중국과학원 광저우 지구화학연구소의 허훙핑 교수 연구팀이 최근 풍화 지각에서 희토류를 친환경적이며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전기동력 채굴 기법을 고안해냈으며, 새 기술이 적용되면 회수율이 지금보다 30% 높아지고 채굴 시간도 70% 단축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통신은 전했다.

중국은 해외 자원개발에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올해 상반기 투자한 신규 광물과 광산 계약 규모가 100억달러(약 13조3000억원)에 달한다고 지난달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연간 투자액을 넘어서는 것으로, FT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투자액은 과거 최고치였던 2018년(170억 달러)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중국의 주요 투자처가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집중되어 있다며 이는 중국 정부가 미국의 제재에 맞서 자체적인 공급망 확보에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희토류 ‘무기화’ 카드도 만지작

중국은 서방의 반도체 제재에 맞서 희토류를 무기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지난달 차세대 소재로 꼽히는 갈륨과 게르마늄 수출 통제에 돌입한 것이 일종의 경고 차원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세계 갈륨의 98%, 게르마늄의 68%를 생산하고 있지만 점유율에 비해 당장 타격이 크지는 않다. 대체 수입선 확보가 가능하고 갈륨의 경우는 당장 생산이 막힐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중국이 우선 ‘잽’을 날리면서 서방의 반도체 제재 움직임을 파악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이 다른 광물로 통제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USGS가 지정한 주요 광물 중 27개의 생산량을 분석한 결과 중국은 지난해 기준 갈륨, 마그네슘, 텅스텐 등 14개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했다. 특히 한국의 주요 먹거리이기도 한 배터리 제조 5대 핵심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 등에서 중국의 점유율이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 상무부는 이달 초 허베이성에서 첫 ‘전국 수출 통제 업무 회의’를 열었다. 상무부는 “회의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의 수출 통제 업무를 총결하고 다음 단계의 핵심 업무를 안배했다”고 전했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에 대해 “중국의 수출 통제 체계 개선은 서방의 대(對)중국 수출 통제 남용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며 수출 통제 조치가 미국을 겨냥한 보복 카드라고 설명했다.

◆브릭스 확장이 희토류 전쟁 최대 위기

브릭스의 확장 움직임도 경계해야 한다. 미국 등은 최근의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6개 회원국을 추가하기로 한 데 대해 이들의 희토류 장악과 이에 따른 ‘희토류 식민주의’ 시도를 우려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보고서에서 “확장된 브릭스는 지구상에서 매장량이 가장 많은 5국 중 3개 국가를 포함해 세계 희토류 72% 보유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 나라는 희토류는 아니지만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망간의 75%, 흑연의 50%, 니켈의 28%, 구리의 10%를 보유한다.

브릭스의 핵심 회원국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최근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서 “희토류에 대한 보호주의가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정도의 블록화 시도다.

이를 주도하는 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인 것도 신경 써야 한다. 브릭스 회원국 확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장에 따라 이뤄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기에 편승해 브릭스 회원국 간 희토류 기반 탈(脫)달러 경제 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 두마 의원 알렉산드르 바바코프는 “새 통화가 금과 희토류 원소와 같은 기타 상품으로 뒷받침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우중 기자 lo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