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10월 어느 토요일, ‘책의 집’으로 운영 중인 경기도 여주의 ‘여백서원’에 키가 크고 인상이 좋게 보이는 한 독일인 남성이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알프레드 메설리 스위스 취리히대 교수였다. 이미 독문학 학회에서 한 차례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안경을 쓴 메설리 교수는 이날 서원을 한번 둘러본 뒤 깊은 인상을 받은 표정으로 간곡히 당부하는 게 아닌가. “다음 번 유럽에 올 때는 꼭 제가 있는 취리히에 들려 달라.”
얼마 뒤,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는 독일 본에서 강연을 마치고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에 메설리 교수가 있는 스위스 취리히에 들렀다. 그는 사흘 동안 메설리와 그의 아내로부터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사흘 내내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끼니마다 빵에 곁들여 김치가 나왔고, 심지어 생태 김치찌개마저 나오기도 했다.
떠나기 직전, 전 교수의 눈앞에 고운 케이스에서 담긴 오래된 책 세 권이 펼쳐졌다. 약 200년 전 출간된 『그림 동화』 완판본이었다. 오랫동안 독일 민속문학과 동화 연구에 매진해온 메설리 교수가 책을 꺼내며 말했다. “이 책이 한국에서도 원형 그대로, 좋은 역자의 손을 거쳐서, 정본처럼 나와 주기를 희망합니다.”
전 교수는 바로 확답을 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매일 여백서원에서 혼자 방대한 분량의 괴테 전집을 번역하고 있었고, 동화 전문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생태 김치찌개까지 끓여주며 환대했던 마음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세상 어디에서 내가 그런 환대를 받을 것인가. 내가 무엇인데.... 결국 번역을 수락했다.
김남희 경북대 교수 역시 심포지엄과 학회 등에서 만나게 된 메설리 교수로부터 번역을 제안 받고 전 교수와 통화 끝에 함께 번역하기로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그림 동화』 공동 번역에 나섰다고, 18일 줌으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세계 동화의 원조가 꼽히는 야코프 및 빌헬름 그림(Grimm) 형제의 1857년판 동화집 『그림 동화』(민음사)가 전영애 및 김남희 두 사람의 공동 번역으로 국내에서 처음 완역 출간됐다. 원제는 『아이들과 가정의 동화』.
『그림 동화』에는 신데렐라 이야기인 「재투성이」를 비롯해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황금 거위」 등 유명 동화들이 담겨 있다. 아울러 오페라 「투란도트」의 모태가 되는 「수수께끼」와 「똑똑한 새끼 재단사」, 셰익스피어 「리어왕」에 영향을 준 「생쥐가죽공주」 등도 담겼다. 수록작은 모두 238편.
메설리 교수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그림 동화』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 보자면, 루터가 성경을 번역해 독일어를 현대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 그 이후 두 번째로 중요한 역할을 한 위대한 책”이라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서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 교수 역시 “온갖 유형의 사람들의 얘기가 도덕적인 판단 없이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사는 데 있어서 많은 지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야코프 그림(Jacob Ludwig Carl Grimm) 및 빌헬름 그림(Wilhelm Carl Grimm) 형제가 마르부르크대에서 만난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소설가 아힘 폰 아르님으로부터 민담을 수집해 보라는 권유를 받은 때는 이십 대이던 1803년. 독일 하나우에서 변호사이자 법원 관리였던 필립 빌헬름 그림과 그의 아내 도로시아 그림 사이에서 1785년과 1786년 차례로 태어난 야코프 및 빌헬름 그림 형제는 모두 마르부르크대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카셀에 있는 저희 집에서 몇 주일 머물 때, 책을 펴내도록 강권했던 사람도 그였습니다. 진정한 삶을 가리키는 모든 것에 그가 얼마나 관심을 보였는지. 가장 작은 것도 그는 관찰했습니다.”(제1권, 18쪽)
당시 독일은 여러 전쟁을 겪은 뒤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생활 및 문화에서 독일의 정체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 시대에 꽃피었던 많은 것에서 아무것도 더 남아 있지 않고, 그 기억마저 민중 속의 노래, 몇 권의 책, 설화, 그리고 무후한 가정 동화 외에는 완전히 상실된 것을 볼 때면 그랬다.”(제1권, 24쪽) 두 사람은 민담이나 동화야말로 소중한 민족문화 유산으로 생각했다. “이 가정 동화를 이야기할 때 띠게 되는 미소는, 고귀해 보이지만 값이 별로 나가지 않는 미소와 비슷하다. 그것들이 아직 지켜지는 곳에서 동화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좋은지 나쁜지, 시적인지, 똑똑한 사람들한테는 입맛 떨어지는 것인지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냥 알고, 사랑한다. 받아들이는 것도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어도 거기서 기쁨을 느낀다. 살아 있는 풍습이란 그렇게나 멋지다.”(제1권, 24-25쪽)
1806년, 그림 형제는 독일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구전되고 있던 동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동화 할머니’로 불린 도로테아 피만도 만나게 된다. 형제는 동화를 국민 생활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개작하는 것을 반대했다.
“수집 방법으로 말하자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충실함과 진실함이었다. 우리는 고유한 도구들에서는 무엇도 더하지 않았고, 설화의 어떤 정황과 흐름도 미화하지 않았다. 우리는 전해 받은 내용 그대로를 전한다. 개별적인 표현이나 필력은 분명히 큰 부분 우리로부터 비롯되었으나, 이런 상황에서도 자연의 다양성을 수집에 그대로 두기 위해 우리가 알게 된 특색들 하나하나 유지하려고 하였다.”(제1권, 32쪽)
형제는 괴팅겐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1812년 86개의 동화를 엮은 제1권을, 1815년 70편 가량의 이야기를 담은 2권을 차례로 출간했다. 이후 꾸준한 재작업 및 재출간을 이어갔다. 판을 거듭하면서 아동에 적합하지 않는 내용이 담긴 일부 동화를 빼기도 했고, 새롭게 발굴된 이야기를 추가하기도 했으며, 「헨젤과 그레텔」을 비롯해 일부 이야기를 창작하기도 했다. 판을 거듭할수록 이야기가 늘어났고, 1857년 생전 마지막으로 제1권 동화 86편, 2권 동화 114편 및 부록, 3권 주석본으로 구성된 판본을 펴냈다.
메설리 교수는 “그림 형제는 민중의 언어를 일상적이면서도 시적인 언어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며 “인간의 이야기도 있고, 동물의 이야기도 있으며, 해학적인 이야기도 있고, 상황을 설명하는 이야기도 있고, 형식적인 이야기들도 있다. 새로운 텍스트 양식을 발견해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민음사는 이번에 그림 형제의 생전 마지막 판본인 1857년판을 저본으로 삼아 동화 238편 모두를 완역 출간했다. 다만 제3권 주석판은 번역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그림 동화』 번역은 1913년 『붉은 저고리』와 『아이들 보이』라는 청소년 잡지에 동화 몇 편이 실리면서 시작됐다. 『그림 동화』 제1권이 1812년 발간됐으니 무려 100년만이었다. 국내에서 첫 번역이 이뤄진 뒤, 다시 110년 만에 이번에 완역 출간된 것이라고 전 교수는 말했다.
“『그림 동화』는 세계 문학사에서 큰 자릿값을 갖는 책이므로 이제는 널리 알려진 각색된 판본 대신 그림 형제가 펴낸 ‘원본’에 충실한 번역이 자리 잡아야 할 때다. 그런 만큼 번역에서는 원문에 최대한 중실한 것에 중점을 두었다.”(제1권, 44쪽)
전 교수는 이번 『그림 동화』 완역 과정에서 가장 고심한 부문은 번역의 기본 텍스트를 기존처럼 존대어로 할지 아니면 평서문으로 할지였다고 고백했다. 결국 동료 김남희 교수 등과 오랜 숙의 끝에 대화는 존대어로 번역하더라도 본문은 평서문으로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책이지만, 마치 풀꽃이 많이 피어 있는 벌판 하나를 혼자서 발견해 어디에 숨겨두고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가끔 혼자 가야죠. 그럼 또 누군가 만나겠죠.”
『그림 동화』는 인물과 주제, 문체 등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어떤 작품은 이상하거나 황당하고, 어떤 작품은 웃기거나 지혜로우며, 또 어떤 작품은 슬프거나 잔혹하기 그지없다. 분명한 인과응보를 담은 신데렐라 이야기 「재투성이」는 어떤가.
“부엌에서 소녀는 아침부터 밤까지 힘든 일을 해야 했다.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 물을 긷고 불을 지피고 요리를 하고 빨래를 했다. 게다가 의붓 언니들은 별의별 못된 일을 다 생각해 내서 소녀를 괴롭히고 놀렸으며 완두콩과 불콩을 잿더미에 쏟아 놓고 소녀더러 쪼그리고 앉아 다시 골라내라고 시켰다. 밤이 되면 일에 지친 소녀는 침대로 가는 게 아니라 아궁이 옆 잿더미에서 잠을 잤다. 그래서 노상 재를 뒤집어쓰고 더럽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은 소녀를 ‘재투성이’라고 불렀다.”(「재투성이」, 제1권, 231쪽)
한국의 콩쥐팥쥐전과 비슷한, 신데렐라 이야기인데, 1697년 프랑스의 샤를 페로 판본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다. 가령 신데렐라에게 멋진 옷과 구두를 가져다주는 존재가 샤를 페로 판에선 요정할머니이지만, 『그림 동화』에선 어머니 무덤 위에서 자란 개암나무다. 아울러 신발 역시 유리구두가 아니라 황금신발이고.
특히 두 언니가 맞지 않는 신발에 발을 집어넣기 위해서 엄지발가락과 뒤꿈치를 잘라 내지만 탄로 나는 장면이나 두 언니들이 받는 처벌 역시 가혹하다. 인과응보나 권선징악이 더 분명하고 확실하다고 할까.
“왕자의 결혼식이 거행되자 가짜 언니들이 와서 아양을 떨며 그 행복을 나누려고 했다. 신랑 신부가 교회로 갈 때 큰언니가 오른쪽에, 둘째가 왼쪽에 서니 비둘기들이 그들의 한쪽 눈을 쪼아냈다. 결혼식이 끝난 뒤 나갈 때는 큰언니가 왼쪽에, 작은 언니가 오른쪽에 있었고 비둘기들은 각각 다른 쪽 눈을 쪼아냈다. 그리하여 둘은 심술부리고 거짓말한 벌을 평생토록 앞을 못 보는 것으로 받았다.”(「재투성이」, 제1권, 241쪽)
동화를 읽어온 우리 인간은 필멸의 존재. 따라서 죽음을 피할 길 없고, 인류 역시 언젠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화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동화에는 모든 존재에 관통하는 순수함이 있고, 영혼의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모든 존재의 내면에서 늘 이야기되고, 다양하게 변주될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내일 저기에서도.
...이야기 하나 해 줄게. 구운 통닭 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통구이는 아주 빨리 날면서 배는 하늘을, 등은 지옥을 향했어. 대장간 모루와 맷돌 하나가 라인강 위로 부드럽고 천천히 조용히 헤엄쳐 갔고, 오순절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얼음 위에 앉아 쟁기날을 먹더라. 목발을 짚고 죽마를 타고 다니는 세 녀석이 토끼 한 마리를 잡으러 갔는데 첫째 녀석은 귀가 안 들렸고, 둘째 녀석은 눈이 안 보였고, 셋째 녀석은 말을 못했고, 넷째 녀석은 한 발짝도 못 움직였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어? 토끼가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것을 장님이 먼저 보았고, 말 못하는 이는 절름발이에게 소리쳤고, 절름발이는 토끼 멱살을 잡았어... 창문 좀 열어, 거짓말이 날아가 버리게.(「디트마르셴의 황당무계한 이야기」, 제2권, 489-49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