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을 찾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전기차·배터리, 우주산업 분야에서 머스크의 투자·협력을 바라는 각국 정상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가운데 성사된 이날 회동은 각각 스타트업 위기 초래, 반유대주의 조장 논란에 빠진 두 사람을 위한 ‘정치적 은폐’의 기회가 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는 18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테슬라 공장에서 머스크, 맥스 테그마크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등과 원탁회의를 했다.
‘인공지능(AI) 안전’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대화는 종종 주제를 벗어났다. 네타냐후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미국 수정헌법 1조의 범위 안에서 반유대주의를 막거나 철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머스크가 X(옛 트위터)의 반유대주의 계정을 복구하고, 자신을 반유대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미 최대 유대인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에 소송을 걸겠다고 위협한 것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영국 싱크탱크 전략대화연구소(ISD)에 따르면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지난해 10월 이후 반유대주의 게시물이 2배 이상 늘었다.
머스크는 반유대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구체적인 비난을 해 달라는 네타냐후의 요청을 두 차례 회피했다고 WP는 전했다. 머스크는 “반유대주의를 포함해 증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모든 것에 반대한다”면서도 “언론의 자유는 때때로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 5억5000만 X 이용자에게 사용료를 부과하는 것이 혐오 콘텐츠를 증폭시키는 봇(자동 메시지 전송 프로그램)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비정부 단체인 ‘세계 시오니스트 기구’의 이자르 헤스 부회장은 성명을 통해 네타냐후가 머스크를 만나기로 한 결정은 “적어도 (머스크의) 방관을 정당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X에서 반유대주의가 만연하는 시기에 머스크와 친분을 두텁게 하는 것은 전 세계 유대인에게 그릇된 신호를 전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네타냐후 내각이 추진한 ‘사법 정비’ 이야기도 나왔다. 네타냐후는 “나는 3부 간 균형을 달성하려 할 뿐 (사법 정비 추진에) 다른 목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사법부 무력화 시도라는 국내외 비판을 받는 사법 정비가 불러온 혼란상이 투자를 위축시키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거센 가운데 네타냐후는 세계 최고 부자인 머스크와의 만남으로 이를 만회하려 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짚었다.
이날 수백명의 시위대가 새너제이공항부터 네타냐후가 탄 차량에 따라붙기도 했다. 앨커트래즈 교도소 외벽에는 ‘앨커트래즈에 온 걸 환영합니다, 비비(네타냐후 애칭)’라는 문구(사진)가 투사됐다.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이스라엘의 한 테크 기업인은 “(이스라엘에는) 투자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며 “우리처럼 투자를 받으려면 사법 쿠데타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