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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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6) 스페인의 아픈 현대사와 전몰자의 계곡

멀고도 가까운 나라 스페인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수교한 지 올해 73주년을 맞은 유럽의 전통우호국이다. 과거에는 투우와 축구의 나라로만 알려졌으나 최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 찾는 주요한 유럽 관광지다. 관광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 문화 교류도 활발해지는 등 주요한 관심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은진의 ‘에스파냐 이야기’ 연재를 통해 켈트, 로마, 이슬람 등이 융합된 스페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소개한다.

 

헤밍웨이, 조지 오웰,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유명 문학가로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우리에게 6.25가 있다면 스페인에는 스페인 내전이 있다.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사람들에게 아픈 현대사의 한 장면이다. 1936년 프랑코가 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직속 부대를 이끌고 독일 히틀러의 공군기의 도움을 받아 스페인 본토로 진격하는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발발했다. 3년간 전쟁을 치르면서 1939년 프랑코의 왕당파가 내전에서 승리했다. 스페인 내전으로 57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무려 36년 동안 군사독재가 이어졌다.

 

전몰자의 계곡 전경. 큰 십자가 아래 추모시설이 보인다. 스페인국가유산 관리청 제공

스페인사람들에게 스페인 내전은 금기시되는 주제다. “과거를 묻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인 ‘침묵의 조약(Pacto del silencio, 망각의 조각이라고도 한다)’ 때문이다. 프랑코 사후 스페인 내전으로 인한 국론 분열을 막고, 미래를 바라보고 가자는 것이다.

 

다만, 스페인사람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 비극을 기억하려 한다. 일종의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어두운 과거나 비극적 역사를 주제로 하는 관광이다. 나치즘의 유대인 학살 흔적을 그대로 보존해놓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일제 강점기 만행을 재현한 우리나라의 서대문 형무소가 대표적인 장소이다.

 

스페인 내전과 독재자 프랑코와 관련된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코스는 전몰자의 계곡(Valle de Cuelgamuros)이다. 프랑코는 내전에서 승리한 후 국립묘지인 전몰자의 계곡을 만든다.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내전에서 전사한 왕당파 쪽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19년 동안 투옥된 공화파 정치범들을 공사에 동원했다. 프랑코 자신도 1975년 사망 후 이곳에 안장됐다.

 

전몰자의 계곡 산에서 바라본 마드리드 시내 쪽 광경. 해발고도 1000m 이상 지역으로 쾌적하지만, 겨울철에는 추우므로 잘 껴입고 가야 한다. 스페인국가유산 관리청 제공

전몰자의 계곡도 시대가 바뀌면서 그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2019년에 과거사 청산을 이유로 전몰자의 계곡에 있던 프랑코의 유해를 마드리드 북쪽의 민간묘지로 이장토록 했다. 왕당파의 추억을 가진 보수세력이 파묘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2022년에는 관련법을 만들어 내전에 참전했던 양측 모두를 추모하는 시설로 바꿨다.

 

마드리드 북서쪽에 위치한 전몰자의 계곡은 도심에서 차량으로 50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은 없다. 입장료는 9유로(약 13000원)다. 무려 400만 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스페인 각지에서 옮겨심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언뜻 보면 청정자연보호지역에 가깝다.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다크 투어리즘을 체험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은진 스페인전문가·문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