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오전 10시 기자가 탑승한 춘천발 인천국제공항행 리무진 버스가 약 4시간의 ‘불안한 여정’을 시작했다.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버스 기사는 안전띠 착용 안내 방송도 없이 운행을 시작했고, 28인승 좌석을 거의 채운 승객 대부분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안전불감 상황은 버스가 인천공항에 도착해 승객들이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내릴 때까지 계속됐다. 이모(38)씨는 이 버스에 탔던 아찔한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시속 100㎞ 될 만한 속도로 달리는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한 중년 남성이 갑자기 안전띠를 풀고 바로 앞 좌석에 있는 사람에게 뭐라고 말을 걸더니, 다시 운전기사에게까지 다가가 ‘(버스가) 몇 시에 도착하느냐’고 물은 적도 있다”며 “굉장히 위험해 보였다”고 했다.
예고 없이 닥치는 교통사고에서 목숨을 지키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안전띠다. 경찰의 계도와 단속, 시민의식 향상 속에서 사라질 것 같은 후진국형 안전띠 미착용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본인은 물론 가족, 시민의 생명을 운에 거는 무책임한 도박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 광역버스를 타는 시민도 안전띠를 매지 않기는 매한가지. 경기 용인시에서 빨간버스로 불리는 광역버스로 서울 강남까지 통근한다는 이모(42)씨는 “예전에는 자리에 앉으면 바로 (안전띠를) 맸던 것 같은데, 요즘은 잘 안 한다”며 “버스에서 안전띠를 안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시외버스 운전기사들은 안전띠가 과거 허리만 감싸는 2점식에서 최근 안전 강화를 위해 어깨까지 감싸는 3점식으로 바뀐 뒤 착용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춘천에서 20여년째 시외버스를 몰고 있다는 김모씨는 “3점식 안전띠가 아무래도 움직이는 데 제한이 많이 생긴다”며 “잠을 청하는 승객이 많은 밤늦은 시간은 안전띠를 많이들 매지만, 낮에는 거의 착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시외버스 기사 박모씨는 “출발할 때 안전띠를 착용하라고 방송으로 안내한다. 이때는 80% 정도 안전띠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다 보면 여기저기서 안전띠를 푸는 찰칵 소리가 들린다”며 “도착할 때는 10명 중 3명이 안전띠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그는 “불가피하게 급정거를 했을 때 안전띠를 하지 않은 노인 한 분이 앞 좌석에 이를 부딪쳐 깨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승용차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 4일 서울 중구 대형마트 주차장. 오전 11시20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총 131대의 차량이 출구를 통과했다. 이 중 운전자가 버젓이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은 차량이 3대나 포착됐다. 2018년 운전자는 물론 전좌석 안전띠 착용이 의무화된 상황임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불법운전이 여전한 것이다.
승용차는 특히 뒷좌석의 안전띠 착용 문제가 심각하다. 20일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교통안전 의식 수준을 나타내는 대표적 지표인 안전띠 착용률은 뒷좌석의 경우 아직도 45%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중구 마트에서 만난 안모(37)씨는 “10년째 운전 중인데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안전띠를 매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 미국에서 생활했다는 안씨는 “우버기사는 뒷좌석 승객에게 안전띠를 매라고 직접 강조한다”며 “미국에서는 어려서부터 뒷자리 안전띠를 매야 한다고 가르치기 때문에 안전띠를 안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5년가량 운전했다는 김모(33)씨는 “습관이 돼 내 차엔 타자마자 안전띠를 매는데 (다른 차의) 뒷자리에 앉으면 착용하지 않는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뒷좌석 안전띠 미착용 이유에 대해선 “귀찮아서”라고 했다. “굳이 찾아 매기도 귀찮고 택시나 버스는 안 매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시민의 안전불감증 속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 감소하던 안전띠 미착용 단속 건수도 지난해부터 다시 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 당시 단속건수, 사고건수, 음주건수가 전체적으로 줄었다”며 “코로나19 사태가 엔데믹(풍토병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시민의 이동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현장에서 적발되는 안전띠 미착용 건수도 다시 상승하고 있다”고 했다.
안전띠 착용을 강조하는 이유는 소중한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경찰청 교통사고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교통사고 발생 시 안전띠 미착용자 사망률(1.69%)은 착용자 사망률(0.29%)의 5.8배나 됐다.
지난 4월13일 충북 충주 수안보면에서 이스라엘 관광객 1명이 숨지고 32명이 중경상을 입은 버스 전복사고는 안전띠 미착용의 끔찍한 사례다. 사고 원인은 운전자의 조작 미숙(경찰 발표)이었지만 피해를 키운 건 안전띠 미착용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경찰에 따르면 사고 당시 몇몇 관광객은 호텔 도착을 앞두고 안전띠를 풀고 짐칸에 있는 짐을 꺼내기도 했다.
거꾸로 지난 6월16일 강원 홍천군 국도 44호선 서울 방향 동홍천 나들목(IC) 입구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중학생 탑승 관광버스는 안전띠 착용의 모범 사례다. 관광버스가 승용차 1대, 화물차 3대에 추돌하면서 학생들이 유리창 밖으로 튕겨 나가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안전띠를 착용한 덕분에 큰 부상자가 없었다. 학생 25명은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간단한 검사를 받은 뒤 귀가할 수 있었다.
안전띠 착용은 시민의 자발적 인식전환과 함께 당국의 단속과 계도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정관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안전띠를 매지 않는 운전자는 도로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운전한다”며 “차량이 많이 다니는 시간대나 장소에 경찰이 나와 단속을 하면 운전자에게 안전띠를 착용해야 한다는 경고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매년 기간을 정해 ‘안전띠 착용의 달’과 같은 캠페인을 일시적으로 진행해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전띠 착용 여부는 교통사고 발생 시 소송 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도 알릴 필요가 있다. 서아람 법무법인SC 변호사는 “(교통사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가 안전띠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피해자 과실을 인정해 그 비율만큼 배상금이 깎인다”고 설명했다. 판례를 보면 5∼30%의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 서 변호사는 “교통사고 형사사건에선 안전띠 미착용 피해자가 죽거나 다치는 경우 가해자를 선처하거나 감형하는 요소로도 작용된다”며 “형사합의금 산정도 안전띠 미착용자는 착용자에 비해 불리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안전띠 착용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기는 사회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어려서부터 어디 앉든 안전띠를 맸던 아이는 커서도 착용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며 “학교에서도 안전띠 착용 교육이 이뤄져 자녀들이 부모에게 ‘(안전띠를) 매라’고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착용률 증가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