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상장을 목표로 기업공개(IPO)를 준비해 온 11번가의 계획이 사실상 불발되면서 다음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11번가는 상장 시기가 미뤄질 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1번가는 연초 상장 외에 매각 가능성을 타진하며 매각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큐텐에 이어 중국 알리익스프레스 매각설이 흘러나오자마자 “상장을 계속 추진한다”고 밝히면서 중국 기업으로의 매각설을 사실상 일축한 모양새다. 업계에선 중국 기업으로의 매각설이 불거질 경우 비판 여론이 커질 것을 우려해 선제적으로 매각설을 차단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11번가의 연내 IPO가 불투명해졌다. 앞서 11번가는 2018년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로 구성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원을 투자받으면서 올해 9월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IPO 시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연내 상장은 물 건너 갔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11번가가 상장 시기를 늦추는 이유는 회사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2018년 투자를 받을 당시 11번가의 기업가치는 2조7000억원으로 평가됐지만 현재는 1조원 안팎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11번가는 투자받은 5000억원에 8% 이자까지 붙여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11번가 모회사인 SK스퀘어의 박정호 부회장은 지난 3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에서 11번가 매각 가능성을 시사했다. 박 부회장은 당시 “재무적 투자자(FI)와 약속한 시간에 엑시트를 해야 하는데 11번가도 마찬가지다. 11번가도 (SK쉴더스처럼) 똑같이 다른 방식의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 했다. SK스퀘어는 지난 7월 자회사인 보안업체 SK쉴더스의 지분 일부를 EQT파트너스에 매각해 8600억원 가량의 자금을 확보한 바 있다. SK쉴더스는 지난해 5월 상장을 시도했다가 철회했다.
당초 이커머스 기업 큐텐이 11번가 인수에 관심을 보였지만 인수 금액과 조건 등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다 이달 초 최종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엔 최근 한국에서 급격하게 성장가도를 달리는 알리 익스프레스가 11번가와 매각 협상을 벌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실상 유일한 인수 후보로 남은 시가총액 300조원 규모의 중국 초대형 커머스 플랫폼 알리바바와 거래 조건을 제시하고 실사 등에 나서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토종 이커머스 11번가가 중국 인수합병을 논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는 물론 온라인상에서도 부정 여론이 생겼다. 자본력이 막강한 알리바바가 한국 온라인 시장을 장악하면 중장기적으로 한국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알리 익스프레스의 국내 월 사용자수는 지난해 7월 261만명에서 올해 7월 476만명을 넘었고 지난달엔 500만명을 돌파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2017년부터 시작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로 인한 한한령, 동북공정 등 반중 감정 속에서도 저렴한 중국 셀러 제품을 앞세워 고속 성장한 셈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알리익스프레스를 비롯 중국업체 1, 2위의 지난해 합산 시장점유율(해외직구 주문건수 기준)은 43%로, 사용자가 폭증한 올해는 50%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경영권 매각에 관한 각종 소문에 11번가 측은 즉각 “경영권 매각을 염두에 둔 논의는 현재까지 진행된 바 없으며 투자금 반환과 관해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거나 상장 기한을 미루는 등 옵션을 SK스퀘어와 고민하고 있다”며 상장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11번가는 조만간 상장 등에 관한 입장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투자자와 협의에 따라 상환금액이 조정되거나 상환을 유예하고 11번가 지분을 보유하는 등의 가능성도 열린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