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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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 10억원” 커지는 ‘포켓몬 버블’… 범죄 그림자도 짙어진다 [S스토리]

日 열도 뒤흔든 ‘포켓몬 카드’ 열풍

특정 테마·규칙 바탕 디자인된 TCG카드
애니메이션 캐릭터 활용해 큰 인기 끌어
2022년 시장 규모 전체 완구시장 25% 차지

애초 5장 한 묶음 1600원 가격으로 출시
피카추 등 지명도 높은 캐릭터 천정부지
“복권 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매입 급증”

지난 4월 아키하바라 가게서 1500장 털려
끊이지 않는 절도 사건에 당국도 초긴장
압수품 보관 놓고 온라인 설전 해프닝도

일본 도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의 한 포켓몬 카드게임 전문점 ‘하레루야2’는 출입문 옆에 붙인 ‘고가매입 중’이라는 안내문으로 손님을 맞는다. 매장 1, 2층 진열장에는 우리 돈 1000원대부터 수백만원을 넘기도 하는 카드가 가득하다. 포켓몬 카드를 살 수도 팔 수도 있는 곳이다.

 

“2만엔(약 18만원) 정도의 것을 찾고 있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기가 쉽질 않네요. 정말 사고 싶은 건 10만엔(90만원)이 넘어서….”

 

지난 19일 이곳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아쉬운 듯 말했다. 가진 돈에 맞추자니 눈에 띄는 게 없고, 갖고 싶은 건 주머니 사정을 한참 넘어서다.

 

포켓몬 카드를 핵심으로 한 최근 일본의 트레이딩 카드 게임(Trading card game·TCG) 열풍을 생각하면 중년의 나이에도 게임용 카드 한 장을 두고 나름 심각한 고민에 빠진 이 남성은 귀여운 수준이라고 해도 좋다. 게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가운데 특히 게임용 카드를 수집, 거래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이들의 존재는 카드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려놔 1장에 1억엔(9억원)짜리 매물이 나오기도 한다. 가격 상승이 이어질 거란 전망이 강한 가운데 카드를 노린 절도, 위조품 제작 등 범죄도 빈발하고 있다.

◆치솟는 인기… 2조원대 TCG 시장

 

TCG는 특정한 테마나 규칙을 바탕으로 디자인된 카드게임 장르를 말한다. 다양한 능력이 부여된 캐릭터의 카드를 조합해 상대와 겨루며, 게임 참가자 간에 카드 거래도 가능하다. 애니메이션, 컴퓨터게임 등으로 제작된 포켓몬, 유희왕, 매직 더 개더링, 원피스 등의 캐릭터를 활용한 카드의 인기가 높다.

 

일본완구협회에 따르면 TCG 시장 규모는 매년 커져 2022년에는 전체 완구시장(9525억엔)의 4분의 1 정도인 2349억엔(2조1200억원)을 기록했다.

 

TCG 팬들은 게임 자체를 즐기는 ‘대전파’(對戰派)와 카드를 모으는 것에 더 열중하는 ‘컬렉션파’로 나뉜다. 게임에 대한 이들의 정성과 진심은 출시일에 판매점이 장사진을 이루는 것으로 표현된다. 인터넷매체 아베마타임즈에 따르면 지난달 포켓몬 카드 발매일에 350명가량이 줄을 서 있던 한 판매점 앞에서는 새치기한 것이 시비가 돼 20대 3명이 난투극을 벌였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한 포켓몬 카드 전문점에서 손님들이 진열된 카드를 보고 있다. 요코하마=AFP연합뉴스

아사히신문은 지난 6월 미토시 중심부에 있는 한 편의점이 새로 나온 ‘포켓몬 카드 151’ 판매를 개시하며 판매 수량을 1인당 5팩으로 한정했던 상황을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외국어로 제작한 것도 판매하지만 일본 카드가 오리지널로 여겨져 외국인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 19일 아키하바라의 한 쇼핑몰 1, 2층의 카드 판매점들은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 중국인, 서양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웬만한 가게에는 일본어와 함께 한국어, 중국어, 영어로 쓴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날 만난 박성경씨는 “친구랑 일본에 놀러 온 김에 어떤 게 있나 싶어 왔다”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한 두 장 정도 기념으로 사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포켓몬 월드챔피언십 2023’에서 포켓몬 카드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 요코하마=AFP연합뉴스

◆1장에 10억원, “끝이 보이지 않는 버블”

 

일본에서 한껏 높아진 TCG 카드에 대한 관심은 컬렉션파들이 만들어 낸 포켓몬 카드 열풍이라고 표현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

 

포켓몬 카드는 애초에 수만엔대로 출시되는 것도 있지만 5장을 한 묶음으로 180엔(1600원) 정도로 살 수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카드 캐릭터의 인기, 일러스트레이트의 우수성, 제작량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물론 희소성이 큰 것일수록 가격이 높다.

게임 앱 관련 사이트 포케카치 기사에 따르면 피카추나 리자돈 같은 지명도 높은 포켓몬 캐릭터 카드가 고액에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소량 제작된 특정 이벤트의 프로모션용, 카드 게임 대회 우승상품용은 확보하기가 어려워 가격이 높다. 2019년 10월 개최된 한 행사에 쓰인 아세로라, 릴리에, 구즈마 3종의 포켓몬 카드는 각 500∼1000장 정도가 배포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릴리에 카드의 경우 700만엔(6320만원)에 거래되는 등 인기가 높다.

 

포케카치는 “릴리에는 여성 캐릭터 중에서도 특히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며 “일러스트 디자인을 포켓몬 카드 업계 ‘넘버1’으로 꼽히는 사이토 나오키씨가 담당해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명 예술작품을 모티브로 제작돼 명성을 얻는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활용한 카드가 그렇다. 2018년 10월에 열린 뭉크 전시회 프로모션용으로 5종이 제작됐다. 당시엔 인기가 없었으나 디자인 우수성이 평가받으면서 서서히 가격이 올라 지금은 30만엔(270만원) 전후에 거래된다.

지난달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포켓몬 월드챔피언십 2023’ 참가자들이 포켓몬 카드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 요코하마=AFP연합뉴스

포켓몬 카드 전문점 하레루야2가 1억엔에 내놓은 ‘포켓몬 일러스트레이터’는 전설로 통한다. 요미우리에 따르면 이 카드는 1990년대 한 잡지사가 연 일러스트레이트 대회 수상자에게 준 것이다. 당시 39장만 제작돼 희귀성이 상당히 높다. 예전부터 100만엔(900만원) 정도에 거래될 만큼 인기가 높았고, 2021년 미국의 한 유튜버가 보관상태가 좋은 이 카드를 530만달러(70억원)에 구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아베마타임즈는 “카드 도안에 열광하는 팬들이 생기면서 회화 같은 보편적 가치를 갖게 되고 각종 미디어에서 가격급등이 다뤄지면서 국내외에서 시장참여자가 늘었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는 “거래만을 위한 목적으로, 혹은 복권을 사는 것 같은 감각으로 매입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과열된 포켓몬 카드 버블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끊이지 않는 절도 사건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에 포켓몬 카드를 노린 절도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아키하바라의 한 가게에서 포켓몬 카드 1500장가량이 털렸다. 피해액은 약 115만엔(1000만원)으로 집계됐다. 5월에는 구마모토현 아라오시에서 피해액 680만엔(6100만원)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음 달에는 시가현 오쓰시에서 300장을 훔쳐가는 사건이 있었다.

 

포켓몬 카드 절도 사건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모은 행동책에게 고액의 보수를 제공하고 범행을 벌이는 ‘야미(闇)바이트’(‘어둡다’는 의미의 야미와 아르바이트의 합성어)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 7월 아키하바라에서 발생한 피해액 1300만엔(1억1000만원) 상당의 사건이 이런 사례다. 경시청은 주범 격인 20대 남성이 SNS를 통해 모은 3명과 공모해 범행을 벌였다고 발표했다.

 

범행 대상이 고가의 카드란 점은 경찰 수사와 관련한 엉뚱한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지난 7월 야마나시현 경찰은 포켓몬 카드 절도 사건을 해결하고 압수품을 언론에 공개했다. 압수한 카드를 고무줄 끈으로 묶은 게 문제가 됐다. 관련 보도를 본 수집가들 일부가 “고무줄로 묶으면 흠이 생겨 가치가 떨어진다”, “상처가 생겨 손해가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거냐” 는 등의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아사히는 “1장에 10엔(90원) 정도 하는 것만 흩어지지 않도록 고무줄을 사용한 것”이라며 “고가의 카드는 지문을 찾는 과정에서 흠이 생기면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다루기가 무척 어려워 수사에 장벽이 되고 있다”는 수사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쿄=강구열 특파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