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설왕설래] 달라진 아시안게임 종목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을 사랑했다. 모든 마을에 운동 공간을 갖춘 체육관이 적어도 하나씩은 존재했다. 극장이나 목욕탕만큼이나 체육관은 공동체 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이자 탁월한 레슬링 선수이기도 했던 플라톤은 “운동만 강조하면 비문화적 인간이 되고, 글로만 훈련받으면 유약한 인간이 된다”고 했다. 그리스 도시국가(폴리스)들은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을 열어 결속력을 키웠다. 오늘날 올림픽은 여기서 유래했다.

1200년 전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장악하면서 강인한 신체를 갈망하던 운동문화는 사라졌다. 대성당이 체육관을 대체하고, 수련 대상은 육체가 아닌 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스로부터 로마까지 이어져온 헬레니즘(인본주의)이 헤브라이즘(신본주의)에 주도권을 넘긴 것이다. 14세기 그리스·로마 시절로 회귀하려 한 문화사조인 르네상스(인문주의)의 등장으로 운동에 대한 반감이 걷히기까지 이런 문화는 이어졌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으로 신체활동이 줄어들자 운동이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 현대는 운동을 권장하고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게 정부 임무가 됐다.

제19회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이 오늘 개막한다. 사상 최다 선수인 45개국 1만2500여명이 참가해 모두 40개 종목, 61개 세부 종목에서 금메달 481개를 놓고 경쟁한다. 이색 종목이 많다. 우선 아시아권 색채가 묻어나는 세팍타크로, 카바디, 우슈와 수상스포츠 드래건보트가 눈에 띈다. 2010년 광저우 대회 뒤로 자취를 감췄던 보드게임 체스, 바둑, 장기도 돌아온다.

처음 선보이는 종목도 있다. 브레이킹과 e스포츠다. 브레이킹은 힙합 음악의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것으로 ‘비보잉’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e스포츠도 이번 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피파 온라인 4, 배틀그라운드(PUBG) 모바일, 스트리트 파이터 V 등 7개 게임에서 최강자를 가린다. 신체의 우월함을 다투는 데서 머리를 쓰는 게임에까지 영역이 확장된 셈이다. 신체 단련과 정신 수련의 균형을 가르쳤던 그리스 시대로 회귀하는 걸까. 대회 흥행을 위해 벽을 허문 건지도 모른다. 설사 그렇더라도 볼거리는 더욱 풍성해질 전망이다.


박병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