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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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법 가드레일’ 최종 결정한 美… 韓 요청안 반영 안 돼

中내 증산 5% 제한 유지 확정

방문규, 美에 협력 요청 안 통해
중국도 ‘당혹’… 강력 반발할 듯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 산업 패권 장악을 위해 시행한 반도체지원법에 따라 일정 규모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존에 제시한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 확장 범위가 그대로 유지됐다. 한국 등 동맹국이 기준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최근 중국 화웨이의 7㎚(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자체 생산 등의 예상치 못한 성취에 따른 경계심이 반영돼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블룸버그통신은 22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을 받는 기업을 상대로 중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범위를 첨단 반도체의 경우 기존 5%선으로 유지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로이터연합뉴스

통신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성명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강화하고 집단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미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는 기업이 국가 안보를 훼손하지 않도록 반도체법의 ‘가드레일’(Guardrail·안전장치)을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 확장 가능 범위는 첨단 반도체의 경우 5% 이상, 이전 세대의 범용 반도체는 10% 이상이다.

 

미국이 지난 3월 밝힌 기준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는 18㎚ 미만의 D램 반도체 등이다.

 

범용 반도체는 28㎚ 이상의 디지털 또는 아날로그 칩을 뜻한다.

 

한국은 이 중에서 주력 생산품인 첨단 반도체 증산 허용 범위를 2배 늘려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이 최근 출시한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에 미국의 제재를 뚫고 자체 개발한 7㎚공정 반도체가 삽입된 게 확인되는 등 미국의 대중(對中) 제재 효과에 의문이 제기된 상황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이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이 과학 논문 ‘핫 페이퍼’ 수에서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다는 조사 결과까지 내놓으며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반도체 자립 성과를 자랑한 데 이어 이론 연구서도 미국을 제친 상황이라 중국의 굴기(倔起·우뚝 섬) 위세가 만만치 않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러먼도 장관은 19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가드레일 최종 규정이 곧 발표될 것이라면서 “(미 정부) 보조금의 단 1센트도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도록 바짝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국과 중국 측은 당혹스러운 눈치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블룸버그 보도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는 대로 중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2일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과 면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방한 중인 돈 그레이브스 미국 상무부 부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가드레일 규정에 관한 우리 측 의견을 전달하고 미국 측 협력을 요청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한 꼴이 됐다.

 

가드레일 설정이 수출통제 남용이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해온 중국은 강력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전부터 가드레일 조항에 대해 결국 미국 동맹국의 이익을 희생하고 여러 나라를 겁박해 인위적으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밀어붙인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계속 중국 기업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익을 확고히 보호하겠다며 강력 대응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이예림·정재영 기자, 베이징=이우중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