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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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궈차오와 아이폰

화웨이, 美제재에도 눈부신 성장
애국소비 속 아이폰 사랑도 대단
美·中 간 반도체 전쟁 사이에 낀
한국기업 어떤 선택 내릴지 주목

베이징 도착 첫날인 지난 15일, 시내 한 쇼핑몰 매장에 진열된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 주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중국에서 애국소비(궈차오·國潮) 열풍이 뜨겁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중국인 입장에서야 미국의 ‘부당한’ 제재를 뚫고 자체 개발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반도체를 통해 고성능 스마트폰이 만들어졌고, 이를 통해 자국이 반도체 자립에 한 발 더 다가섰으니 그럴 법도 했다.

중국 정부가 공무원들에게 애플의 아이폰을 사무실에 가지고 오거나 업무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공공기관으로도 조치가 확대될 것으로 알려진 것과 맞물려 화웨이 스마트폰의 입지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얼추 맞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화웨이는 메이트60 프로가 인기를 끌자 해당 스마트폰 출하량 목표치를 20% 늘렸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

이튿날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 내 공식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15 시리즈 예약판매가 시작되자마자 아이폰15 프로와 프로 맥스 모델이 1분 만에 매진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크게 와닿지 않았다. 보도에서 전한 ‘대부분의 판매 물량이 프리미엄을 얹어서 되팔기 위한 것’이라는 일각의 목소리가 신빙성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생각이 바뀐 것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아이폰15 중국 정식 출시 첫날인 22일 베이징 싼리툰에 위치한 애플스토어 앞은 아이폰15를 수령하려는 중국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3일 애플스토어를 찾았을 때도 신형 아이폰을 보기 위한 인파가 애플스토어 매장을 가득 채웠고, 일부는 건물 바깥쪽으로 줄을 서서 자기 수령 차례를 기다렸다. 자신이 구입한 아이폰15를 웃돈을 주고 판매하거나 재판매 목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매입하려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애플스토어를 메운 사람들에 비하면 극소수였다.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 충격 등에 가려졌지만 사실 아이폰15의 중국 내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시장정보업체 IDC에 따르면 애플은 올해 2분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오포(17.7%), 비보(17.2%), 아너(16.4%) 등 중국 브랜드에 이어 15.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특히 600달러(약 80만원) 이상 고가 휴대전화만 놓고 보면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67%로 압도적인 1위다. 아이폰15의 경우 베이징 대졸 직장인 첫 월급 수준인 5000∼6000위안(약 92만∼11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임에도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당국의 금지령을 무색하게 만든 중국인의 아이폰 사랑을 지켜보며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제재가 떠올랐다. 화웨이는 미국의 수출통제에도 7㎚ 공정을 사용해 최신 아이폰과 비슷한 통신 속도를 갖춘 5세대(5G) 이동통신 지원 스마트폰 메이트60 프로를 만들어내며 ‘제재 무용론’에 불을 붙였다. 비록 삼성전자와 TSMC 등이 양산 경쟁에 돌입한 3㎚ 공정에는 5년 이상 뒤처졌지만 미국 정부가 2019년부터 화웨이에 대한 제재를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과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가 지난 5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칩을 사들일 수 없다면 자체 개발에 나설 것이고, 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만 도와줄 것”이라던 예측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여기에 미국 반도체산업협회 등도 제재가 무의미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미국 주도의 반도체 제재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결국 정치 논리에 의한 일방적 제재로는 소비 심리도, 기술 발전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미국은 자국 반도체 보조금 수령 기업의 중국 생산 설비 확대와 투자 제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반도체법의 ‘가드레일’(Guardrail·안전장치)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이전부터 가드레일 설정이 수출통제 남용이며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해친다며 반발해온 중국은 강력 대응 의지를 천명한 상태다. 미·중 반도체 전쟁의 종착점이 궁금해지는 한편 사이에 낀 한국 기업들이 내릴 선택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미쳤다.


이우중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