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다. 다들 고향으로 모이는 계절, 오랜만에 피붙이들 재회하는 기쁨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린 시절 익숙했던 고향길 찾아나서는 일도 설렘이 크다. 성묘로 뒤늦은 감사의 뜻을 조상님께 전하는 일이야말로 정말 마음 훈훈해지는 일이다.
필자에게 추석은 줄줄이 이어질 제사 시즌의 서막이다. 추석 이후 이어지는 시조모, 시조부, 나아가 시모 제사까지 줄줄이 제례의 시작을 울리는 시즌이다. 서른다섯 해 매년 똑같은 일정으로 가을을 보냈지만 여전히 맘이 급해지고 어깨가 뻣뻣해지긴 마찬가지다.
물론 간소화하라는 여러 사람의 권고도 많이 있었으나 언제나 바쁜 며느리 노릇 외상으로 몰아두었다가 한 번에 빚 갚는 기분이랄까? 시부가 아직 생존해계신 연유로 불평하지 않고 제사상을 차리고 있다. 어차피 아이들 내외와 모여 식사 한 번 하는 것이라고 치면 까짓것 못할 일도 아니란 생각으로 매번 국도 끓이고 산적도 굽는다.
똑같은 일이었지만 시모 돌아가시기 전에는 왜 그리 제사 지내는 일이 지긋지긋 했나 모르겠다. 원래 내가 자발적으로 하는 일도 남이 시키면 하기 싫은 원리 때문이었으리라. 시모가 앓아 누우신 이후부터는 제사가 더 이상 스트레스로 느껴지지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명절마다 고부갈등을 느꼈던 이유는 제사 준비의 주도권 다툼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필자도 시어미가 되다 보니 예전 일을 속속 떠올려 본다. 제일 서러웠던 일이 무엇인지, 제일 큰 스트레스는 무엇 때문에 발생했었는지, 요즘은 특히 더 되뇌이고 있다. 부디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은 하지만 상대방은 어찌 느끼는지 모르겠다.
범죄발생률을 기준으로 보자면 명절은 확실히 가정 내 폭력이 증가한다고 알려진다.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이 모두 모이다 보니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닌가 보다. 묵혀 있던 앙금, 서운함, 갈등이 모두 터져 나와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명절시즌 발생하는 가정폭력 사건은 해마다 낮게는 5.4%, 높게는 34%의 증가율을 보인다고 알려진다. 감소 추세는 관찰된 적이 없어서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말썽도 함께한다는 일상활동이론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범죄 발생에도 시즌이 있어서 여름에는 폭력사건이 겨울에는 방화사건이 많아지며 나아가 우리나라는 특히 명절 가정 내 폭력사건이 증가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일설 범죄학 이론이 설득력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계묘년 한가위는 이런 전통을 깨뜨리는 원년으로 한 번 삼아보는 것은 어떨까? 삶이 너무나 팍팍해졌다. 여러 가지 경제지표가 나빠지면서 물가도 오르고 생계비도 여간 높아진 것이 아니다. 안 그래도 세상살이 힘겨운데 가족이라도 위로가 되어주면 어떨까. 모친이 정신을 놓기 전까진 아무리 밖에서 힘드는 일을 겪었어도 모친과 얼굴을 마주하면 얼었던 마음이 눈 녹듯이 흐물흐물해졌었다. 이제는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명절에 조심해야 하는 일은 가정폭력만이 아니다. 영락없이 금년에도 수도 없이 많은 보이스피싱 문자들이 들어온다. 이제는 통신업체들이 국제전화로 들어오는 의문의 문자들을 애당초 차단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용자들도 피싱 의심 번호는 신고나 차단을 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5년 새 보이스피싱으로 입은 피해 금액이 1조7000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여전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하여 실제 딸의 목소리를 합성하여 송금을 요구하는 범죄까지 벌어졌었다고 하니, 모르는 사람들에게 송금을 하기 전에는 꼭 한 번은 마음을 가다듬고 확인을 해야 하겠다.
최근 필자의 전화번호에도 아르바이트로 유인하는 피싱 문자가 들어왔었다. 국제전화가 아니어서 하마터면 연결을 해볼 뻔하였다. 시간당 10만원 이상씩도 벌 수 있다니 궁금증을 유발하는 내용임에는 틀림이 없다.
명절에는 특히 우체국이나 택배를 가장하여 스미싱 문자들이 들어오기도 한다. 주의가 필요하다. 문자 속에 포함된 악성 URL 정보를 무신경하게 눌렀다가는 악성 앱이 설치되어 자동으로 연결된 피싱 웹사이트에서 내 개인정보를 탈취하고 그를 이용하여 금전적 피해를 입힐 수도 있다. 매사 의심과 조심성이 필요하다.
각종 사기의 시대가 되었다. 아는 사람에 의해서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기망과 속임수에 노출되는 이 시대에는 더더욱 신뢰할 수 있는 지지자들이 절실하다. 가족은 그중에서도 제일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확인시켜주고 도움을 주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번 명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넉넉함으로 사람들을 대하리라. 그들이 내게 많은 부담과 스트레스를 준다고 하더라도 절대 이성을 잃지 아니하고 헌신을 다하리라. 모두들 이번 명절만큼이라도 숨을 세 번 참고 마음속으로 열을 세어보자. 말하기 전 잠시라도 주의를 환기하게 되면 격한 감정을 이완시키는 데 현저히 도움된다고 한다. 2023년 계묘년 추석에는 가족 간 말썽을 줄여보는 원년을 한 번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