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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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홀로서기… 기댈 곳 없어 더 서글픈 자립준비청년들 [심층기획]

보호종료청소년 年 2000명… 사후관리 구멍 여전

지원정책 쏟아졌지만… “여전히 쪼들려”
정착금 500만원서 최대 1500만원으로
月 지원수당도 2024년 50만원으로 인상
갑자기 생긴 목돈에 충동소비도 많아
“공과금 납부 등 경제교육 필요” 지적

지자체 전담인력 태부족… “내 편 없나요”
17개 시·도 담당자 고작 161명 불과
1人당 70명 지원꼴… 밀착관리 힘들어
전남은 8명이 아이들 1000명 맡아
증원 시급… “1人당 30명으로 줄여야”

“사랑을 받고 싶기에 나는 나가/ 근데 어딜 가나 보기 싫은 만화/ 꼬마 엄마 아빠와 케잌 들고 가는 만남/ 명절에 그나마 각자 집에 남아/ 나만 나갈 수 있어 사람들이 내 기분 알아?”

 

래퍼 이진명(22)씨가 비영리 공익재단인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2021년 발매한 싱글 음원 ‘토이스토리’ 가사 중 한 대목이다. 가정불화로 고등학교 1학년 때 보육원에 입소한 그는 3년간 그곳에서 생활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 음악으로 풀어냈다. 이 부분은 명절에 밖에 나가면 화목한 다른 가족의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로 썼다고 한다.

자립준비청년은 빈곤이나 미혼모 문제, 부모의 이혼이나 사망, 보호자의 학대 등으로 아동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생활하다 만 18세(희망자에 한해 만 24세)가 돼 보호가 종료되는 청년이다. 한국에선 해마다 2000명 안팎의 보호아동들이 자립을 준비한다.

 

최근 몇 년 새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급격히 높아졌고, 관련 지원정책도 쏟아졌다. 한때 500만원 수준이었던 자립정착금은 서울과 경기·대전·제주의 경우 1500만원, 나머지 시·도는 1000만원으로 올랐다. 매달 나오는 자립지원수당도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오른 데 이어 내년에는 50만원으로 인상될 예정이다. 지급 기한도 보호종료 후 3년에서 5년으로 연장됐다. 

 

그럼에도 자립준비청년의 비극은 여전하다. 올해 6월과 7월 충남 천안에서 2명의 보육원 출신 청년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지난해 8월 광주에서 보육시설을 퇴소한 청년 2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채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죽기 전 경제적인 어려움을 주변 지인들에 토로하거나 유서에 남겼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보호종료예정 청소년의 42.8%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보호종료청년은 50%로 더 높았다. 

 

◆지원금 증액에도 “쪼들려”

 

이달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아름다운재단 캠페이너들은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금 증액이 자립청년들 선택지를 넓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캠페이너들은 자립준비청년 후배들이 똑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양한 정책 활동, 콘텐츠 제작 등 여러 활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신선, 손자영 캠페이너는 팟캐스트를 통해 다양한 자립준비청년들의 자립경험을 전하고 있다. 

 

손자영 캠페이너는 “지원금이 늘어나면서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분야에 도전하거나, 보육원 시절엔 해볼 수 없었던 여러 취미활동을 할 여력이 생긴 친구들도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갑자기 생긴 목돈을 충동적으로 쓰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캠페이너 신선(30)씨는 “70만원짜리 청바지를 사거나 중고차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며 “보육원 때 보통 한 달 용돈으로 3만원에서 10만원을 받다가 큰돈이 들어오면서 억눌러져 있던 것들이 표출돼서 계획 없는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고 안타까워했다. 신씨는 “경제적인 지원들은 늘어나고 있는데 자립준비청년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렵다’, ‘경제적 고민이 가장 크다’는 똑같은 어려움을 얘기하고 있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사례가 잦자 정부도 지난해 보완대책에서 자립정착금 지급절차를 분할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보호종료 시 자립교육을 받은 뒤 1차로 정착금 일부를 지급하고, 1차 사용 내용 및 2차 사용계획 등을 확인한 뒤 나머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신씨는 “무분별한 소비도 문제지만 공과금을 어떻게 내는지, 가전제품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등을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생계비만 지원해주면 알아서 잘 자립하겠지가 아니라 아동기 때부터 돈을 어떻게 계획적으로 써야 하는지, 은행이나 부동산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담인력 1인당 청년 70명 관리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 자립준비청년들이 보호종료 후 느끼는 주된 감정이다. 손자영씨는 “15∼20명이 한 생활관에서 지내다가 혼자 나와 있다고 생각하니 심리적으로 너무 어렵고, 외로웠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떠올렸다. 

 

대학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하더라도 인간관계는 어렵기만 했다. 손씨는 “직장에 다닐 때도 거의 보육원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냈다”며 “직장 동료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선을 그으면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신선씨는 “학교에서 보육원 출신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자꾸 거짓말을 하게 됐고, 나중엔 내가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자괴감도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존재가 없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들어간다. 손씨는 “심리적으로 힘들 때마다 가족처럼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자립준비청년의 사례 관리 및 지원을 할 수 있도록 17개 시·도 자립지원전담기관에 전담인력을 배치하도록 했다. 전담인력은 자립준비청년의 진학, 취업, 소득, 지원금 수령 여부 등을 확인하고 필요할 경우 주거·의료·경제·고용 등 자립지원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자립청년에 비해 지원인력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간한 ‘자립지원전담기관 운영실태와 개선과제’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17개 시·도의 자립지원전담인력은 161명에 불과하다. 올해 자립준비청년이 1만1403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담인력 1명당 약 71명의 청년을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시·도별 차이도 크다. 전담인력 8명이 1094명을 지원하고 있는 전남은 전담인력 1인당 자립청년 136.8명을 돌보고 있다. 세종은 관련 인력 1인당 자립청년 13명을 전담해 17개 시·도 중 가장 적다.

 

정부는 내년까지 자립지원전담인력을 230명까지 늘릴 계획인데, 이렇게 되면 전담인력 1인당 지원해야 하는 청년 수는 약 50명으로 줄어든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자립 전에 (사기 등) 피해사례들을 많이 알리고 기본적인 경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자립지원전담인력의 담당 사례 수가 많아서 일대일 밀착관리가 안 되고 있다”며 “1인당 30명 정도까지 줄이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정우·이정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