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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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칼럼] 핵잠·원자력협정 차별과 한·미동맹

韓, 핵연료 재처리·핵잠 보유 불가
원전 강국인데도 日·호주에 밀려
北·러, 군사기술과 무기 거래 합의
美 설득해 핵 잠재력 확보해야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6개 국가 중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20% 이상 고농축 권한이 없는 유일한 나라. 원전이 없는 호주도 보유하게 되는 원자력 추진 잠수함(핵잠)을 가질 수 없는 나라. 원전기술 강국 한국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핵무기 비보유국임에도 유일하게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고농축 권한을 가진 일본과 대비된다. “왜 호주는 핵잠이 되고 한국은 안 되나” 하는 형평성 논란이 일 수밖에 없다.

김환기 논설실장

문제의 근원은 허용 여부 권한을 쥔 미국의 한국에 대한 차별 대우다. 일본과 호주를 더 신뢰하는 동맹국으로 여긴다는 방증이다. 능력과 자격이 있는데도 유사시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핵잠재력과 핵잠을 확보하지 못하는 비정상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가.

더구나 북한과 러시아의 군사기술·무기 거래 합의가 우리 안보의 중대한 위협 요인으로 부상했다.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에 필요한 포탄 등을 러시아에 주고 핵탄두 소형화 및 대기권 진입, 핵추진 잠수함, 정찰위성과 관련한 첨단 군사기술을 지원받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정찰위성 성능 고도화와 핵잠 확보를 통한 공격능력 향상은 한·미·일 확장억제력의 효과를 약화시킨다. 자위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해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가 국제원자력기구(IAEA) 규정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책이다. 물론 고난도의 과제다. 그렇더라도 미국을 설득할 논리와 묘안을 찾아야 한다. 재협상 시한이 2035년이라고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북핵 상황이 위중한 만큼 조기 재협상을 요구해야 옳다.

1987년 미·일 원자력협정 개정에 성공한 일본은 좋은 참고사례다. 일본은 IAEA가 부과한 의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핵무기는 보유하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천명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다. 하나 이는 목표성취를 위한 연막작전일 뿐이었다. 1969년 작성된 외무성 기밀문서 ‘우리나라의 외교정책 대강’에는 ‘당분간 핵무기는 보유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취하지만 핵무기 제조의 경제적·기술적 능력은 늘 보유한다’고 적시돼 있다. 일본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 비난할 일이 아니다.

일등 공신은 협상을 진두지휘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다. 의원 시절인 1954년 첫 원자력 예산안을 제출하고 원자력평화이용조성비를 원전 원료인 우라늄-235에 맞춰 2억3500만엔으로 책정한 데서 그의 핵 잠재력에 대한 집념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통해 50t의 플루토늄을 확보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2002년 “일본이 결심하면 일주일 이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한 말은 허세가 아니다.

미국은 원자력 이용의 자율성을 달라는 한국의 요구를 핵무기 전용 가능성을 들어 반대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북한의 선제 핵공격 위협에 노출돼 있는데도 그랬다. 한·미·일은 지난달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한팀이 되어 대응키로 합의했다. 그렇다면 한국도 일본 수준의 핵 잠재력을 갖추도록 돕는 게 맞다. 안보 환경상 핵 잠재력이 더 필요한 나라는 한국이지 않은가.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라는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의 지적은 시의적절하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호주에 2030년대 중반까지 5척의 핵잠을 판매한다. 잠항 능력이 월등한 핵잠은 수중에서 핵 공격은 물론 순항미사일도 발사하는 전략무기다. 북한이 최근 수중 핵공격이 가능한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진수한 마당이다. 호주 못지않게 핵잠이 필요한 나라는 한국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 입장은 변함이 없다. 잠수함 건조 기술이 있으니 핵 연료만 제공해달라고 해도 핵 비확산만 되뇐다. 융통성 부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핵잠 지원을 더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데도 효과적임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한·미 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을 세워 핵 잠재력과 핵잠 확보에 성공한다면 안보 외교의 기념비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환기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