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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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웅 모신 줄 알았더니 ‘나치 부역자’… 캐나다 하원의장 사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최근 캐나다 의회를 방문했을 때 ‘영웅’으로 소개돼 기립 박수까지 받은 98세 퇴역 군인이 사실은 ‘나치 부역자’인 사실이 드러나 캐나다 하원의장이 사과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캐나다 의회를 찾은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영웅으로 의회에 초청된 야로슬라프 훈카(오른쪽)의 모습. 오타와=AP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앤서니 로타 캐나다 하원의장은 지난 22일 야로슬라프 훈카라는 퇴역 군인을 의회에 초청해 “2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에 대항해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운 투사”, “전쟁 영웅” 등으로 칭송했다. 로타 의장은 젤렌스키 대통령 방문의 상징성을 높이기 위해 나중에 캐나다로 이주해 자신의 지역구민이 된 훈카를 의회로 초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상황을 담은 보도 사진을 보면 젤렌스키 대통령 부부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훈카가 소개될 때 다른 청중들과 함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일부 유대인 단체는 분노를 나타냈다. 훈카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SS) 소속 14사단에 복무했던 인물이라는 이유에서다. 당시 SS 14사단은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며 유대인 수십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앞줄 가운데) 부부와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앞줄 오른쪽) 등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캐나다 의회에서 야로슬라프 훈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일어나서 손뼉을 치고 있다. 오타와=AP연합뉴스

14사단은 당시 ‘갈리시아’로 불리던 우크라이나 서부와 폴란드 남동부의 자원 봉사자들로 구성됐다. 이 부대는 1939년 소련이 우크라이나 서부를 점령한 뒤 창설돼 우크라이나 독립을 위해 싸우고자 했던 우크라인들이 많이 몰려들었다고 도미니크 아렐 오타와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다만 “그들의 목표가 독립이었다고는 해도, 나치에 의해 훈련받고 나치를 위해 싸웠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타 의장은 결국 서면 사과문을 내고 “내 결정을 후회하게 만드는 더 많은 정보를 알게 됐다”며 “내 행동에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캐나다와 세계 유대인 공동체에 깊은 사과를 전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총리실도 성명을 통해 “(로타 의장의) 사과는 올바른 일”이라며 트뤼도 총리와 젤렌스키 대통령은 훈카 초청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