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조연경의행복줍기] 자전거 길의 교훈

운길산역 ‘물의 정원’에 길게 뻗어 있는 자전거 길은 가을이면 황화코스모스가 물결처럼 일렁이어 더욱 아름답다. 며칠 전부터 중간 지점에 흙을 고르는 공사를 하면서 일시적으로 상행선, 하행선 구분이 없어지고 길이 좁아졌다. 나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자전거와 마주칠 우려에 그 지점에서는 안전하게 자전거를 끌고 걸어 다녔다. 그런데 지난 주말 자전거에서 내려서 걸어가는 게 귀찮아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대로 달렸다. 조마조마한 마음 탓이었을까? 늘 가던 그 길에서 넘어지면서 고랑에 빠졌다. 순간 누군가가 나를 끌어내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바로 뒤에서 자전거 타고 달려오던 청년이었다. 발목에 통증이 있었지만 참을 만했다. 나를 살펴보던 청년은 쓰러진 자전거를 일으켜 세워 체인과 바퀴, 손잡이 등을 일일이 만져 보았다. 그리고 나한테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나는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내 뒤를 따라오는 청년은 나를 살펴볼 것이다. 창피한 마음에 무조건 괜찮다고 했는지, 자전거는 이상이 없는지 달리는 내 모습에서 살펴볼 것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게 괜찮다고 느꼈는지 청년은 “먼저 갑니다” 하고 나를 추월해서 달렸다. 내가 길에서 넘어져도 이런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받을 수 있을까?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끈끈한 동료의식과 동지애가 자전거 길에는 있다. 무심코 배낭 고정 끈을 묶지 않고 달리면 반드시 “배낭끈 묶으세요. 위험합니다” 하는 소리가 날아온다. 배낭 아래쪽 끈이 늘어져 체인 사이에 끼면 크게 다칠 수 있다. 길가에 자전거를 세우고 이리저리 살펴보면 누구든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와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 그래서 자전거 배낭에 늘 스패너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내 자전거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자전거도 고쳐 줄 생각으로. 초보자의 긴장도 느껴지는지 “잘 달리고 있습니다. 파이팅” 응원의 목소리도 날아온다. 그래서 자전거 길을 달릴 때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늘 든든하다. 이런 따뜻한 배려와 응원을 받다 보면 대부분 누군가가 넘어졌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정직한 부메랑의 법칙이 결국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직장인이 가장 우울할 때는 입사 동기가 먼저 승진했을 때라고 한다. 후배가 먼저 승진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다. 오직 경쟁자로만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조력자로 받아들인다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오래 갈 수 없다.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바람의 냄새와 강도에 따라 가을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고 외로움은 커질 것이다. 외로움을 방치하면 아주 고약해진다. 무력증, 우울증, 허무감 등으로 삶의 생기를 잃어 간다. 외로움을 어루만지고 즐기려면 자전거를 타고 가을 속으로 달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전거를 못 타면 무슨 상관인가? 산책하면 된다. 자전거 길, 산책 길에서 만나는 누군가가 진한 향의 커피 한 잔을 건네면 그 따뜻한 온기로 시린 가슴이 데워질 수 있다. 그 누군가가 내가 먼저 되는 것도 멋진 일이다.


조연경 드라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