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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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소송 줄줄이 패소에도…美 FTC, 아마존에 반독점 소송

AP연합

 

미국 빅테크 반독점 소송에서 줄줄이 패소한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리나 칸(Khan) 위원장이 아마존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빅테크 저승사자’로 불리며 미국의 메타(페이스북)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연달아 패배하며 책임론이 불거져온 바 있다. 지난해 말 아마존·구글 등 5대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반독점 법안들이 미국 상원 통과에 실패한 가운데 기업 대상의 무리한 마녀사냥식 소송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미국 FTC는 26일(현지시간) 아마존이 온라인 스토어 시장과 판매자를 위한 시장에서 독과점을 남용했다며 시애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17개 주(州)가 참여한 이번 소송의 핵심은 아마존이 판매자에게 자사의 물류·배송서비스를 이용하도록 제공하고 있고, 판매자가 아마존 프라임 상품에 자사 제품을 노출하려면 어쩔 수 없이 아마존 물류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것이 독과점에 해당한다는 지적이다. 리나 칸 위원장은 “아마존이 판매자에게 자사 물류 프로그램, 광고 서비스를 쓰도록 강요했으며, 독점력을 이용해 아마존 온라인스토어에서 쇼핑하는 수천만 가구와 고객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고 했다. FTC는 제제 일환으로 “아마존이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FTC가 아마존을 제소한 것은 올해 들어서만 네번째다. 아마존 스마트홈 업체의 이용자 불법 염탐, 인공지능 활용을 통한 13세 미만 아동정보 무단 수집, 동의없는 유료 회원제 프로그램 유도 등을 이유로 소송을 냈다. 아마존은 즉각 반박했다. 아마존의 데이비드 자폴스키 수석 부사장은 “FTC 주장은 팩트가 틀렸고 반독점법에도 반한다”며 “FTC 요구대로 자산을 매각할 경우 소비자가 선택할 제품 수가 줄어드는데다 가격은 오히려 높아지고 배송 속도가 느려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마존의 사업이 소비자한테 오히려 이익이고, FTC의 제재를 받을 경우 소비자 혜택이 크게 감소한다는 주장이다.

리나 칸 FTC 위원장. 로이터

 

하지만 미국 주요 외신과 플랫폼 업계에선 “빅테크를 소송을 무기로 저격하는 칸 위원장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올 초 미국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은 FTC가 메타의 가상현실(VR) 기업 ‘위딘 언리미티드’(Within Unlimited·이하 위딘) 인수를 막아 달라며 제기한 인수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2014년 창업한 위딘 언리미티드는 포브스 등이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칭송 받으며 VR 기반 피트니스 콘텐츠 앱인 ‘슈퍼 내추럴’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메타는 자사가 보유한 VR기기 오큘러스와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위딘 인수에 나섰지만, FTC가 지난해 7월 “메타는 경쟁을 해야 한다. 독점하면 안 된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메타는 슈퍼 내추럴 같은 피트니스 앱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다 부족한 피트니스 강사 보유 등 사업역량이 부족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고 보도했고, FTC는 항소를 포기했다.

 

지난 7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액티비전블리자드 합병거래를 막아달라는 소송에서도 졌다. 뉴욕타임즈는 “소송을 주력 무기로 사용하는 칸 위원장의 전략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반독점법의 역사를 뒤바꾸겠다는 자기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있는지 의구심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에 따라 미국 경쟁당국은 이른바 FANG(페이스북, 애플, 넷플릭스, 구글) 중 넷플릭스를 제외한 3개 기업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칸 위원장이 빅테크 기업을 잇따라 저격했지만 소송에 연달아 패소하는 이유는 소비자가 플랫폼을 통해 얻는 효용성, 기업 간 인수합병에 따른 투자와 시너지 효과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2017년 예일대 로스쿨 재학 당시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패러독스’를 통해 아마존을 처음 저격하기 시작한 칸 위원장의 규제철학은 납품업체와 근로자를 착취하며 몸집 불리기에 나선 빅테크 기업을 무너뜨리자”는 것이었다. FTC가 메타 소송에 뛰어든다고 나설 때도 미국 현지에선 “제대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독과점이 성립하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칸 위원장은 “시장경쟁과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제소했지만 졌다. 블룸버그·뉴욕타임즈 등 현지 외신에선 “FTC의 행정력을 낭비하면서 지속적으로 치명상을 입고 있다”고 꼬집어왔다.

 

칸 위원장에 대한 비판이 쇄도하면서 일각에서는 “국내 경쟁당국이 규제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는 칸의 움직임을 답습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색·광고·SNS 등 분야에서 전 세계 여러 지역에서 70~90%대 점유율을 확보한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 내수시장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마존의 지난해 매출(5140억달러)은 694조원에 이르는데, 이는 국내 유통시장(602조원·외식여행 제외)보다 크며 유통시장 점유율 5%를 크게 웃도는 사업자가 없다. 2021년 기준 미국 5대 빅테크 기업인 아마존·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메타의 합산 매출은 1조3792억달러(1852조원)으로, 우리나라 한 해 국내총생산(GDP·1799조원)보다 크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단순히 해외를 답습한 플랫폼 규제는 글로벌 경쟁력 상실과 소비자 타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