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오락실에 얽힌 추억들이 있을 법 하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으면 곧장 오락실로 달려가 ‘스트리트 파이터’나 ‘킹오브파이터즈’, ‘철권’등을 즐기던 그 시절. 스타크래프트를 위시로 한 PC게임이 유행하면서 PC방에 그 왕좌를 내줬지만, 오락실에서 하는 격투 게임이 주는 매력은 여전하다. 동네형들에게 시쳇말로 ‘얍사비’라 불리는 기술을 걸다가 오락실 구석으로 끌려가 맞았던 기억들이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난 28일 중국 항저우 e스포츠 주경기장에서 열린 스트리트 파이터V에서 대만의 시앙 유린을 4-3으로 꺾고 한국의 e스포츠 첫 금메달을 안긴 김관우(43)는 36년간 격투 게임을 열심히 해왔다.
예전 어른들에겐 그저 오락실에 빠진 불량아로 보일지 몰라도 그는 이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e스포츠는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됐다. 김관우는 한국e스포츠 사상 첫 종합대회 챔피언으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당당히 믹스트존으로 들어선 김관우는 “게임을 왜 하겠나. 재미있으려고 한다. 오늘도 재미있었다”며 붉게 충혈된 눈으로 씩 웃었다.
김관우는 그저 평범한 게이머였다. 어릴 적 담임 선생님한테, 부모님께 혼나면서도 오락실을 드나들며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했다. 고수이다 보니 ‘무서운 동네 형들’한테 맞을 뻔한 적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김관우의 실력이 좋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다.
격투 게임의 원초적인 매력이 좋아 어른이 돼서도 계속했다고 한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는 3년 전쯤에야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스트리머로 나서며 사실상의 ‘전업 프로 게이머’가 됐다. 김관우는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저 어렸을 때 오릭실은 절대 금기였다. 학교에서 끌려가서 선생님께 혼나고, 부모님도 엄청나게 싫어하셨다”고 돌아봤다. 이어 “결국 부모님은 '너 하고 싶은 거 하라'며 포기하셨는데, 오늘은 금메달 땄으니까 기뻐하실 것 같다”며 웃었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역사가 36년이나 되는 대표 격투 게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현재 격투 게임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아주 높지는 않다. 젊은 층은 대부분 리그 오브 레전드(LoL)에 열광한다.
그래서 격투 게임계 고수들의 세계는 좁다. ‘고인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먼저 쓰이게 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격투 게임계다. 격투 게임 중에서도 스트리트 파이터 유저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이 시리즈를 즐겨온 30~40대다.
고수들은 김관우의 스파링 파트너가 돼 달라는 강성훈 대표팀 감독의 요청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한다. 지방에 거주해 사정상 서울로 올 수 없는 고수들은 한국e스포츠협회(KeSPA)의 도움으로 ‘온라인 스파링’을 펼쳤다고 한다.
강 감독은 김관우의 이번 금메달을 “한국 스트리트 파이터계의 ‘원기옥’”이라고 표현했다. 드래곤볼에서 손오공이 지구, 그리고 우주의 모든 생물로부터 기를 받아 만드는 원기옥처럼, 스트리트 파이터를 즐기는 한국의 모든 고수들의 힘이 모여 만들어진 금메달이란 의미다.
김관우의 금메달 획득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한국 e스포츠 첫 금메달은 페이커를 앞세운 LoL 대표팀이 따낼 것으로 기대됐다. 김관우도 “지난해 스트리트 파이터 최고 권위 대회인 캡콤컵에서 한국 지역 우승을 했을 때가 내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과연 내가 더 발전할수 있을까에 대해 스스로 의심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관우는 다른 고수들의 도움에 힘입어 길게는 10시간까지 맹훈련하며 기량을 갈고닦았고, 결국 한계를 넘어섰다. 김관우는 “'나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 싸워나갈 것이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이런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관우는 지금까지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고령 금메달리스트다. 많은 40대 남성들이 이날 그의 플레이를 보며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을 터다. “이제 우리 뭐 좀 하려고 하면 잘 안되고, 머릿속에서는 되는데 손은 잘 안 움직이잖아요. 그래도 연습했더니 옛날 실력을 되찾을 수 있겠더라고요. 더 열정적으로 연습하고 자신감을 가지면, 우리 모두 저처럼 금메달 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