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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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여류작가 5인전 ‘What-多 got-多’(왔다갔다)

여성 신인작가 5인 기획전 ‘What-多 got-多’(왔다갔다)
한지에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 적용, 동양화에 대한 대중성 높여
작품의 표면과 이면을 넘나들 수 있는 전시 추구
4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긴 연휴, 윷놀이도 지치고 영화 관람도 물렸다면, 색다른 시도가 돋보이는 ‘젊은’ 전시회를 찾아보자.  

 

김나현, 류은선, 이호경, 정수연, 청이인 등 여성 신인작가 5인의 기획전 ‘What-多 got-多’(왔다갔다)는 한지라는 공통 바탕재 위에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을 적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다. 작품 이면을 동시에 조명함으로써 회화, 그중에서도 동양화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을 높인다.

 

김나현  ‘약속된 과거, 현재, 미래’

재료와 기법에 대한 이해가 회화에 더 성큼 다가서게 하는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라 보고, 재료 설명과 작업과정을 담은 영상, QR코드를 통한 음성해설, 작품에 사용된 도구 등을 완성된 작품과 함께 배치했다. 이는 관람객이 작품 내부로 들어올 수 있도록 보다 친근하게 길을 열어주고, 자체적으로는 동양화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다.

 

김나현은 장지에 분채와 석채를 사용하는 전통 채색 기법을 통해 기억을 이미지화한다. 안료를 입자 크기 순으로 쌓아 올리는 방식은 거듭되는 붓질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화면 안에 레이어를 만든다. 붓질이 중첩되어 형성되는 모호한 형상은 가변적이고 축적되는 기억의 특성을 보여준다. 작가가 그려내는 기억은 사적인 경험과 감정에서 기인하지만 흐릿한 형상을 통해 작가가 작품 속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닌, 감상자가 본인의 경험이나 기억으로부터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

 

류은선  ‘삶의 순환’

류은선은 소소하면서도 섬세한 일상을 포착해 수묵담채로 담아낸다. 아이에게서 보이는 천진난만 면모들에 주목하고, 제3자인 아이 모습에 본인을 투영하여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거나 자아상을 찾기도 한다. 작가가 마주한 아이는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과 함께 삶의 의미를 만들어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한 대상이지만 드물어지는 아이의 표현을 통해 도시 속 메마르고 견고한 불통의 벽을 무너뜨리는 힘을 발견하고자 한다.

 

이호경  ‘간조’

이호경은 모래 알갱이로 만들어진 바탕 위에 두꺼비집을 쓸어가는 파도 소리를 시각화하여 먹으로 얹는다. 열심히 쌓아 만든 두꺼비집을 쓸어가는 파도의 소리를 채집하고 이를 가시화하는 작업을 통해 자연에 대한 공감각적 심상을 환기한다.

 

정수연  ‘기억의 분화’

정수연은 장지 위에서 분채, 과슈, 아크릴 스프레이 등 혼합 매체를 활용해 유년 시절 식물과의 추억 과정을 이야기한다. 식물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그리기도 하고, 기억 속 변형을 거쳐 희미해진 모양을 그리기도 하며 과거 식물 잔상을 되짚어간다. 실재와 환영이 공존하는 초록 공간은 색감을 한 겹씩 쌓아나가 완전히 채워졌을 때 오묘함과 깊이감을 발현하며 비로소 하나의 무대로 귀결된다.

 

청이인  ‘1/12, 2/11, 3/10, 4/9, 5/8, 6/7, 7/6, 8/5, 9/4, 10/3, 11/2, 12/1’

청이인은 동양 전통 회화의 대표적 소재인 산수를 건축 내부 공간에서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선으로 재해석해 수묵과 채색의 조화로 구현한다. 작가가 작품에서 설정한 안정적 거리는 작가와 자연의 관계를 보여주는 매개체이자 작가와 타인의 관계가 투영된 형상이다. 동양화 재료에서 보여줄 수 있는 따뜻하고 평안한 감각은 타인과의 심리적 거리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안정적 위치를 모색해 나간다.

 

‘왔다 갔다’전은 완성된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는 일반 전시 구성에서 벗어나 작품의 표면과 이면을 넘나들 수 있는 전시를 추구한다. 작가와 관람객이 함께 환유할 수 있는 경계에 질문을 던진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