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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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세로 별세한 6·25 참전용사… "캐나다는 영웅 잃었다"

1951년 가평전투에서 싸운 버나드 코트
중공군에 맞서 커다란 희생 치르고 승리
올여름 한국 방문한 손녀 "특별한 경험"

“캐나다는 진정한 영웅을 잃었습니다.”

 

캐나다 보수당 소속의 연아 마틴(한국명 김연아) 연방 상원의원이 최근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6·25전쟁 참전용사 버나드 코트를 추모하며 한 말이다. 마틴 상원의원은 한국계 캐나다인으로는 처음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캐나다의 6·25전쟁 참전용사 버나드 코트(1929∼2023). 유엔사 SNS 캡처

유엔군사령부는 9월 3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인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캐나다에서 1만㎞ 이상 떨어져 있으나 우리의 마음만은 코트와 그 가족, 친구들 곁에 있다”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코트가 살았던 온타리오주(州) 윈저의 지역 신문 ‘윈저스타’에 따르면 고인은 오랫동안 암으로 투병하다가 9월 14일(현지시간) 병원에서 숨졌다. 유족으로 부인 베아트리체와 2남 1녀 그리고 손주, 증손주들이 있다. 마틴 상원의원은 “고인이 편히 쉬기를, 또 캐나다와 한국을 위한 고인의 봉사가 오래도록 기억되길 기원한다”고 밝혔다.

 

6·25전쟁 당시 캐나다는 총 2만6000명 넘는 병력을 보내 한국을 도왔다.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그 가운데 516명이 전사했으며 상당수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전쟁 기간 캐나다군이 맹활약을 펼친 것이 1951년 4월 23∼25일 벌어진 가평 전투다. 캐나다군, 호주군, 뉴질랜드군 등으로 구성된 영연방군이 경기 가평 일대에서 남진하려는 중공군에 맞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패퇴시킨 전투다. 당시 중공군이 가평을 점령해 서울과 강원 춘천을 잇는 국도를 따라 남하해 오면 서부전선의 유엔군이 측면에서 협공을 당할 위험이 있었다. 그 때문에 가평 전투 승리는 유엔군에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어줌과 동시에 서울∼춘천을 잇는 도로를 지켜 전선을 분할하려는 중공군 계략을 무너뜨린 것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가평에는 가평 전투 당시 캐나다군 경보병연대(PPCLI)의 전공을 기리는 전적비 그리고 캐나다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각각 세워져 있다.

 

6·25전쟁 당시 가평전투(1951년 4월 23∼25일)에 참전한 캐나다군 경보병연대(PPCLI)의 활약상을 기리는 전적 기념비(왼쪽). 오른쪽은 캐나다 참전용사 버나드 코트의 젊은 시절 모습. 군복 상의 오른쪽 어깨 위로 PPCLI 부대명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유엔사 SNS 캡처

가평 전투 당시 코트는 22세 나이의 이등병으로 경보병연대 전우들과 함께 싸웠다. 비록 승리를 거뒀으나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공세에 캐나다군도 커다란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코트는 치열한 교전 도중 목격한 참상을 평생 잊지 못하고 괴로워 한 것으로 전해진다. 코트의 지인은 윈저스타에 “고인은 참전 경험에 관해 말하는 것을 무척 꺼렸다”며 “전쟁의 기억이 그를 몹시도 괴롭혔다”고 말했다.

 

고인의 손녀인 레이첼 코트(22)는 6·25전쟁 참전용사 및 그 가족의 한국 방문을 후원하는 한국 정부 프로그램에 따라 올여름 한국을 찾았다. 레이첼은 “내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라며 “전후 70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의 학생들은 여전히 학교에서 6·25전쟁 역사에 관해 배우는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할아버지가 전쟁에 대해 가족한테 들려준 모든 얘기가 사실이란 점을 한국 방문 때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레이첼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고인이 생전에 녹화한 인터뷰 영상을 제공했으며, 이 영상은 6·25전쟁 관련 특별 전시회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29일 윈저 지역에 사는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주관으로 코트의 추모 행사가 열렸다. 과거 경보병연대를 지휘했던 빈센트 케네디 예비역 준장이 군을 대표해 추도사를 했다. 유엔사는 사령부에 근무하는 캐나다군 경보병연대 소속 데니스 마린저 소령을 가평전투 전적지로 보내 고인을 기리도록 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