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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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태세 전환 中, 주도권은 한국에

文정부 때 한국 푸대접했던 中
한·일 밀착에 “방한” 손 내밀어
북·러의 ‘거래’도 우리에게 기회
경협·대북문제 등 철저 준비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랜만에 신문 1면에 등장했다. 그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체결 등을 거론하며 “꼭 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일을 정말 하늘이 도우셨는지 다 하고 감옥에 들어가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와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했다. 2015년 12월에 했다.

2013년 2월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한 박 전 대통령은 첫 3·1절 기념사에서 ‘역사는 미래를 향한 자기성찰’이라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향적 태도 변화를 일본 측에 촉구했다. ‘보수 우익’ 아베 내각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나기천 국제부장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에서 취임 뒤 처음 대면한 아베 전 총리에게 불만을 맘껏 표출했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주선해 어렵게 이뤄진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은 우리말로 인사를 건넨 아베 전 총리를 외면했다. 그 유명한 싸늘한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2015년 11월 정상회담 때 갈등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 취임 뒤 햇수로 3년 만에 처음 만난 두 정상의 웃는 얼굴은 아베 전 총리의 청와대 방명록 서명 때까지였다. 단독회담 공개 모두발언도 없었다. 확대회담까지 전 일정을 마친 뒤 응당 있어야 할 공동 기자회견도 생략됐다. 박 전 대통령은 만족할 만한 합의안을 가져오지 않은 아베에게 밥도 대접하지 않았다. 아베는 종로에서 ‘혼밥’을 했다.

한 달여 뒤 합의안이 발표됐다. 배상금을 일본 돈으로 지급하고 정부 책임을 담은 총리 언급까지 하게 한 상당한 성과물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주도권을 갖고 끈기 있게 밀어붙인 결과였다.

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30분간 회담했다. 2년9개월 만의 정상 간 회동인 데다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 행사장까지 찾아간 것치고는 시원찮은 대접이었다. 양국 관계 주도권을 쥔 것처럼 으스대는 일본 총리 행태에 국민 자존심이 상했다.

2015년과 2022년의 한·일 정상 모습이 이렇게 다른 건 그사이 정권을 쥔 쪽이 뒤집은 위안부 합의 탓이 컸다. 문재인정부 때 일본이 얼마나 한국을 박대했는지 국민은 안다. ‘10분 환담’, ‘8초 악수’, ‘회담 보류(거절)’ 등 홀대와 굴욕의 연속이었다. 지소미아 파기,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서로 간 보복 공격이 이어졌다. 그 결과로 위안부 합의 핵심인 배상금은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퇴행했다.

이런 두 나라를 죽 지켜본 이가 있다. 박-문-윤 정부로 한국이, 아베-기시다 정부로 일본이 변하는 동안에도 계속 그 자리에 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2014년 7월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해 박근혜 정권에 공을 들였다. 이듬해 9월엔 중국을 찾은 박 전 대통령을 주석단에 올려 환대했다.

2017년 12월 국빈 방문한 문 전 대통령은 공항에서 차관보급 영접을 받고, 베이징에서 열 끼 중 여덟 끼를 혼밥했다. 2인자 리커창 총리나 공산당 최고 지도부 상무위원도 만나지 못했다.

이게 중국이 한국을 대하는 자세다. 시 주석이 항저우 아시안게임 행사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말한 여시구진(與時俱進)이다. 시대 흐름에 맞게 대처한다는 뜻이다.

한·일 밀착은 중국에 위협이다. 그래서 관리 필요성이 커진다. 윤석열정부는 역대 어느 때보다 미국, 일본과 가깝다. 이후 중·한 관계에서 한국이 중국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게 적절한 대우를 해 줘야 할 나라로 바뀐 것이다. 시 주석이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먼저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태세 전환은 우리에게 기회다. 취임 후 왕성한 윤 대통령의 외교 기조는 한마디로 ‘실리’다. 여태 미국과 일본에 집중했다면 지금부터는 중국이 내민 손을 잡아야 할 때다. 마침 북한과 러시아가 무기 거래 가능성 등을 고리로 급작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중국 심기가 불편한 것도 한국에 기회다.

호들갑 떨며 중국을 반길 필요는 없다. 시 주석 방한은 내년에나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시간이 충분한 만큼 그에게서 받을 경제협력·대북견제 내실화 등의 선물 목록을 하나하나 챙기면 된다. 중국에서 한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이 커졌고, 그 판을 결정할 주도권이 윤 대통령에게 있다는 게 중요하다.


나기천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