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프로젝터 스크린에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화가 떠올랐다. 자리에 앉은 성인 남성 4명은 강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들 앞에 놓인 그래픽 태블릿 화면에는 각자가 작업 중인 웹툰과 애니메이션 장면이 띄워져 있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애니메이션 관련 수업이다. 수강생들이 푸른색 수형복을 입고 있다는 점만 뺀다면.
이 강의는 서울남부교도소가 지난해 7월부터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웹툰 콘텐츠 직업훈련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4일 현재 해당 프로그램을 수료한 이들은 총 30명에 달한다.
남부교도소는 연성대 웹툰만화콘텐츠과와의 협업을 통해 웹툰 크리에이터 자격증 취득에 필요한 스케치, 채색, 소묘, 연출 등 전문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또한 외부의 민간 콘텐츠 사업자를 통해 교도작업과 연계한 위탁작업을 수행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기술을 숙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정착금을 스스로 마련할 수 있다. 이처럼 교도작업과 취·창업이 연계된 문화콘텐츠 분야 통합 직업훈련 프로그램은 세계 최초라는 것이 법무부 측 설명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훈련 참여자들이 부단한 노력과 작품 활동에 대한 자발적인 몰입으로 어느덧 전문 직업인 수준의 웹툰 실력 향상을 이뤘다”고 말했다. 실제로 훈련에 참여한 이들 중 8명은 최근 병무청, 한국전력공사,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주관한 다양한 공모전에서 입상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한 지자체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수형자 A씨는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남들보다도 더 열심히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며 “웹툰을 통해 한국 문화콘텐츠 산업에 기여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일꾼이 되는 것으로 삶의 의지를 찾고 잘못에 보답하겠다”고 밝혔다.
이인섭 남부교도소 훈련실장은 “수형자들이 후회와 낙인이라는 또 다른 감옥 안에서 희망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지난 범죄를 뼈저리게 반성하고 조심스럽게 회복을 향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서 지난하지만 작은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한국의 산업환경에 적합한 다양한 신직종 직업훈련을 도입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직업훈련을 통해 출소 후 취·창업 가능성은 물론 사회 적응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고강도의 기술숙달 과정에서 자기성찰과 악습 교정의 효과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 법무부는 남부교도소에서 시범운영 중인 웹툰 직업훈련 프로그램의 효과를 모니터링한 뒤, 다양한 문화콘텐츠 분야의 직업훈련으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