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팀은 매년 다음 해 소비 흐름을 전망한다. 올해 7월까지만 해도 내년 키워드는 ‘청룡의 해’를 뜻하는 ‘블루드래곤’이었다. 김 교수팀은 용이 들어간 책 부제 짓기, 그림 그리기, 파워포인트 작성 등에 생성형 AI를 활용했다. 그러나 결과물의 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AI의 작업 속도는 빨랐지만, 완성도가 아쉬웠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 단계에선 사람의 개입이 필요했다.
김 교수팀은 결국 키워드를 바꿨다. AI가 용 그림을 그리더라도 마지막 순간 용의 눈동자는 인간이 그려야 했다. 말 그대로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상황이었다. 김 교수팀은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화룡점정’이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 교수는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간 ‘트렌드 코리아 2024’ 간담회에 참석해 내년 키워드로 화룡점정을 의미하는 ‘드래곤 아이스(DRAGON EYES)’를 제시했다. 아무리 인공지능 시대라도 마무리 작업은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인공지능이 민첩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만 완성도는 아직 사람이 봐줘야 하는 단계”라며 “결과물의 80%는 기계가 하더라도, 나머지 20%는 사람이 손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가장 뚜렷한 트렌드로는 ‘분초 사회’를 꼽았다. 이는 ‘1분 1초’가 아까운 세상, 시간의 가성비가 중요해진 사회적 경향을 의미한다. 넷플릭스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왼손으로는 끊임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린다. 시간이 아까워 정상 속도가 아니라 1.5 배속이나 2배속으로 콘텐츠를 본다. 김 교수는 “요즘은 한 가지 일만 하지 않고, 동시에 여러 개의 일을 하며 시간을 금같이 나눠 쓰는 사람이 많다”며 “예전에는 돈과 시간 중 돈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돈과 시간이 비슷하게, 또는 시간이 더 중요해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주요 트렌드로 ‘육각형 인간’을 꼽았다. 이는 외모, 학력, 자산, 직업,집안, 성격 등 모든 것에서 하나도 빠짐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김 교수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강박적인 완벽함이 드러난 트렌드라고 소개했다. 그는 “예전에는 개천에서 용 나는 성장 서사가 유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환생, 빙의 등을 통해 처음부터 모든 걸 갖춘 주인공이 활약하는 서사가 웹소설 등에서 주류를 이룬다. 요즘은 고진감래의 과정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AI에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 위해 인간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짐을 의미하는 ‘호모 프롬프트’, AI 기술을 토대로 한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 ‘버라이어티 가격전략’, 여섯 시 정각이 되면 퇴근해 자녀와 함께 보내는 아빠들인 ‘요즘남편, 없던 아빠’, 재미를 좇는 일이 일상이 된 ‘도파밍’도 새로운 트렌드로 꼽았다.
이 밖에도 김 교수는 저예산과 유동적 전략으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도해 보는 ‘스핀오프 프로젝트’, 나의 가치관과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는 콘텐츠 등을 소비하는 ‘디토소비’, 유목민적 라이프스타일을 구가하는 ‘리퀴드 폴리탄’, 돌봄의 시스템화를 추구하는 ‘돌봄경제’를 내년 트렌드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