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도 내고 친구들도 만나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박경인(29)씨는 최근 고용노동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사업 2024년도 예산이 ‘0원’으로 편성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3년째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는 해고 통보와 마찬가지였다.
동료지원가는 고용노동부가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을 통해 제공하는 중증장애인 일자리다. 동료지원가는 다른 중증장애인이 취업의욕을 고취하고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자조모임과 상담 등을 진행하며 1인당 75만원(월 60시간 기준)을 받고 있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중증장애인 지역 맞춤형 취업지원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올해를 끝으로 이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동료지원가 당사자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커지고 있다.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전국 187명의 중증장애인은 당장 3개월 뒤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업이 처음 시작된 2019년부터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는 이다영(31)씨는 “이 일을 하면서 삶이 재밌어지고 자신감을 얻게 됐다. 사업이 폐지되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장애인단체들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피플퍼스트(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속 활동가 27명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를 점거하고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이들이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이유는 동료지원가 사업의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박씨는 “지난 3년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살아갈 힘’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내가 왜 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살기 싫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박씨는 “예전에는 사람들 사이에 낄 데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졸업 후에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트와 카페에서 1년 계약직으로 일해본 적도 있지만,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어려운 말을 이해하지 못해 대화에 끼지 못했다.
동료지원가 일은 달랐다. 발달장애인이 모여서 일하다 보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 통했다. 모두가 쉬운 말로 소통해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했다. 누군가의 지시대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박씨의 의견을 물어봐 주는 사람들이 있고 박씨의 의견에 따라 일할 수 있었다. 박씨는 “저는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돕는 일을 좋아한다. 동료지원가로 일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들 얼굴빛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박씨가 이 일을 통해 친구 사귀는 법, 같이 밥을 먹는 법,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듯, 박씨에게 상담을 요청한 다른 중증장애인에게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과 용기를 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사업 폐지를 결정한 근거가 합당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고용부는 “2019년 사업 시작 이후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실적 집행률이 20∼30%로 저조했다”며 사업 폐지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외부활동이 제한된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피플퍼스트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대면 만남이 제한된 탓에 실적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강조했다.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 9명은 6일 “고용노동부가 해고 위기에 놓인 발달장애인의 노동 기회 요구에 응답하지 않은 것과 경찰이 범죄자를 다루듯 무력을 동원한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내용의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