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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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성업’ 중인 불법사이트, 방심위가 접속하면 ‘폐점’ 위장…실태 파악 미비

방송·영화 다운로드 제공 사이트
방심위 IP 주소만 접속 차단시켜
대책 마련했지만 여전히 한계 있어
IP 주소 유출 실태 파악도 안 돼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를 불법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는 A 사이트. 방송한 지 일주일도 안 된 따끈따끈한 드라마가 올라오는 이곳은 엄연한 불법사이트이지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심의망에 걸리지 않았다. 해당 사이트 운영자가 방심위 IP(Internet Protocol: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장치에 부여되는 고유 번호)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방심위 IP로 해당 사이트를 접속하면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 사이트’라는 안내가 나왔다. 방심위 IP가 불법사이트 운영자에게 고스란히 노출된 셈이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방심위 IP만 접속 차단하는 불법사이트의 존재를 방심위는 2021년 자체 감사를 통해 인지했다. 그러나 감사 이후 내놓은 대책 역시 한계가 있는 것으로 9일 파악됐다. 불법사이트는 디지털 성범죄, 마약 거래 등 강력 범죄가 벌어지는 공간이 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단속과 심의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심위는 내·외부 모니터링을 통해 불법사이트로 의심되는 사이트 목록을 파악하고, 통신심의를 거쳐 불법 여부가 확인된 사이트에 대해서는 접속차단이나 삭제 등 시정을 요구한다. 이때 심의는 방심위 건물 내부에서 심의위원회 합의를 통해 이뤄진다. 불법사이트 업계는 방심위가 있는 방송회관 건물 IP 주소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심의를 회피하고 있다.

 

방심위는 유동 IP를 설치해 문제를 해결했다는 입장이다. 방심위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인 무소속 하영제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을 보면 ‘지난해 4월 연간 167만6400원의 비용을 내는 유선 IP를 통신심의국과 디지털성범죄심의국 등에 설치했다’는 내용이 있다. 유동 IP는 주기적 혹은 비주기적으로 바뀌는 IP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기존 IP와 다른 것은 맞지만 절반만 바뀌는 방식이라, 새로 설치한 IP 역시 일단 한번 노출될 경우 이전과 마찬가지로 차단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심위 위원을 역임했던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는 “범위를 넓게 조정해 차단하면 그만인 유동 IP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특정 IP 주소의 접속을 차단하는 불법사이트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도 현재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 의원은 “방심위는 불법사이트에 방심위의 IP가 얼마나 공유되고 있는지 실태 파악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노출 범위와 피해를 시급히 확인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공

전문가들은 심의 방식을 전면적으로 개선해 방심위가 불법사이트에 대한 단속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나쁜 사람이 진화하면 이를 모니터링하는 국가는 우위의 기술적 환경을 갖춰야 하는 것”이라며 “화이트해커에게 방심위 시스템에서 취약점이 무엇인지 점검하게 하는 것이 역량 강화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임 교수는 차단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VPN(가상사설연결통신망) 이용을 꼽았다. 아예 접속 위치를 교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심위는 디지털성범죄로 한정하고 있는 현행 전자심의를 마약이나 도박 정보 등에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방송회관이라는 공간적 제약을 허물고 긴급히 의결할 필요가 있는 사안에 대해서도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함이다. 현재 국회에는 전자심의 확대와 관련한 법안 7건이 계류 중이다.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